박제가 된 그리움 / 박은우 박제가 된 그리움 / 박은우 네가 버리고 간 섬의 겨울은 혹독했다 나는 아홉 근의 살점으로 봄을 구걸했고 여섯 근의 살점을 더 태워 섬 가득 동백꽃을 피웠으나 너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유배지의 집시 오로지 오늘을 숭배하는 팅팅 불어가는 엄마의 젖이었다 땀구멍마다 너의 유전인자가 움트던 봄날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어두워질 때 / 엄원태 어두워질 때 / 엄원태 금호강 방죽 위를 걷는다 해는 저물었지만 잉크병 같은 박명薄明의 푸른빛이 있다 오래전부터 이 시간을 사랑하였다 강변 풍경엔 뭔지 모를 이끌림 같은 게 있다 어스름이란, 마음에도 그늘처럼 微微한 흔적을 남긴다 강바닥 버드나무들은 언제부턴가 둥근 무덤들을 닮았다 그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새의 윤곽 / 김언 새의 윤곽 / 김언 아주 먼 곳에서 하늘은 있다. 너를 들여다보기 위하여 아주 먼 곳에서 공기는 빛나고 날은 흐리다. 맑은 날이면 구름이 분명한 자리를 차지하고 너보다는 느린 속도로 하늘에 구멍을 내고 아주 먼 곳에서 흐린 날까지 걸어서 온다. 구름에는 비의 두 발이 언제라도 숨어 있다. 지상에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사람의 몸값 / 임보 사람의 몸값 / 임보 금이나 은은 냥(兩)으로 따지고 돼지나 소는 근(斤)으로 따진다 사람의 몸값은 일하는 능력으로 따지는데 일급(日給) 몇 푼 받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연봉(年俸) 몇 천만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한 푼의 동전에 고개를 숙이는 거지도 있고 몇 억의 광고료에 얼굴을 파는 배우도 있다..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가시연꽃 / 임보 가시연꽃 / 임보 가시연은 맷방석 같은 넓은 잎을 못 위에 띄우고 그 밑에 매달려 산다 잎이 집이며, 옷이며, 방패며 또한 문이다 저 연못 속의 운수행각, 유유자적의 떠돌이 그러나 허약한 놈이라고 그를 깔봐서는 안 된다 그를 잘못 건드렸다간 잎과 줄기에 감춰둔 사나운 가시에 찔려 한 보름쯤 앓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바보 이력서 / 임보 바보 이력서 / 임보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남들은 명문세가를 좇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林步)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林步)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꽃잎, 분분한 / 한수재 꽃잎, 분분한 / 한수재 꽃똥이라도 튄다면 순식간에 불길을 낼 건조한 날들의 정전기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 위로 가장 뜨거운 말을 하려는 입술 위로 그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입술 위로 바람은 불고 불어와 말하지 못하는 입술이 고이는 눈이 될 때까지 사방에는 눈이 아파오는 꽃잎 분분한, 그 향기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배꽃 / 장현숙 배꽃 / 장현숙 비누거품 같은 배꽃이 가득 피었다 보글거리며 거품이 봄바람에 꺼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서로의 어깨를 겯고 있다 어느 해인가 꺼져가던 강아지 쥐약을 먹고 마루 밑에 들어가 시퍼렇게 눈에 불을 켰다 어머니는 배꽃같이 거품이 이는 비눗물을 나무가지로 재갈을 물리고 강아지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을 추천합니다 / 최금진 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을 추천합니다 / 최금진 다단계라는 말 속에 길게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가요 계단의 끝엔 피라미드 꼭대기가 보이고, 달이 보이고 피라미드 안에는 평생 황금만 생각하며 눈 깜박이는 미라들이 달고 시원한 어둠을 훔쳐 먹어요 서울로 가요 서울 남산에 뜬 달은 커다란 은쟁반 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