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갈대밭 / 이진심 들판의 갈대밭 / 이진심 들판의 거대한 갈대밭이 숨을 들썩이며 씩씩거리고 있다 시끄러운 가을이다 흙들은 하루가 다르게 푸석해져 간다 상한 과일들은 나무 밑둥에 속 편한 자세로 떨어져 몸을 조금씩 말려간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이 지상의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다 식어가고 있다 하늘을 올..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7번국도 외 1편 / 김영식 7번국도 외 1편 / 김영식 오늘도 늙은 마술사는 두꺼운 외투 안쪽에서 심심풀이처럼 소도구들을 꺼내놓는다 탁자처럼 네 발로 허공을 쳐들고 있는 오소리를 갑자기 커진 동공에 그렁그렁 어린 새끼들 울음소릴 담고 있는 들고양이를 수의 같은 죽지로 제 주검을 덮고 있는 까투리를 가끔씩 물웅덩일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낙엽에게 / 나호열 낙엽에게 / 나호열 나무의 눈물이라고 너를 부른 적이 있다 햇빛과 맑은 공기를 버무리던 손 헤아릴 수 없이 벅찼던 들숨과 날숨의 부질없는 기억의 쭈글거리는 허파 창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였다 슬픔이 감추고 있는 바람, 상처, 꽃의 전생 그 무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겨울새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 복효근 새들이 겨울 응달에 제 심장만한 난로를 지핀다 두 마리 서너 마리 때로는 떼로 몰리다보니 새의 난로는 사뭇 따숩다 저 새들이 하는 일이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꽃눈 잎눈 만드는 것을 잊거나 두레박질을 게을리 하는 나무를 흔들어 깨우는 일, 너무 추워서 옹..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노래의 기원 / 복효근 노래의 기원 / 복효근 처마 끝에 한 무리 참새가 몰려 있다 어미새는 장독대 근처 매화나무 가지에서 아이들을 부르고 부리에 노란 테두리가 채 가시지 않은 새끼들이 이제 갓 꽃을 지운 매화나무 가지를 향하여 뛰어내린다 아까부터 고양이 한 마리 처마 그늘 깊숙한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참새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풀독 / 김영산 풀독 / 김영산 - 지금껏 내 목덜미에 남아있는 풀독이여 나는 시장에서 더덕 몇 뿌리를 사다 심었지 어느 날 싹이 돋아 무럭무럭 줄기를 뻗어 갔거니, 나는 또 어느 날 노각을 사다 씨를 빼어 더덕 옆에 뿌리고 거름흙을 덮어 주었지 그랬더니 이번엔 오이씨들이 싹을 틔워 점점 줄기를 뻗어가며 잎 그늘..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불멸의 오막살이 / 정병근 불멸의 오막살이 / 정병근 한 발만 헛디뎌 봐라 고압선이 하늘을 긋고 차들이 질주하는 간선도로 가로등 아래 까치집 하나 걸려 있다 그 누구의 다비에 쓸 나뭇단인가 근면 성실 노력의 가훈을 실천하는 저 집터가 세다 고압의 정신과 고속의 바퀴와 밤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이야말로 우리의 경전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모과 / 손택수 모과 / 손택수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던 모과를 주워왔다 올 겨울엔 모과차를 마시리라, 잡화꿀에 절여 쿨룩이는 겨울을 다스려보리라 도마에 올려놓고 쩍 모과를 쪼개는데 잘 익은 속살 속에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온다 모과 속살처럼 노래진 애벌레가 단잠을 깨고 우는 아이처럼 사방을 두..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그믐 / 성선경 그믐 / 성선경 그믐은 지퍼를 잠근 입 믐 하고 입 두 개가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아무 말 없이 쭉 지퍼를 잠근 입 달도 없는 밤을 아버지는 얼굴로 말했다 늘 빡빡한 살림에 이자가 이자를 낳는 그믐 호롱불도 없는 저녁상을 말없이 물리고 나면 별빛같이 담뱃불만 반짝거릴 뿐 무겁게 입을 닫고 믐 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엘 콘도 파사* / 이성웅 엘 콘도 파사* / 이성웅 신기루 같은 초원 한 평 분양 받았다 오늘밤 이방인이 되어 한 평 남짓, 그들의 잃어버린 초원에 내가 서있다 내 발길 끌어당기는 검은 입술 그들의 뿌리는 인디오다 노예로 팔려 뿔뿔이 흩어진 고향 돌아갈 수 없는 철새가 되어 동해 바다축제, 먹거리장터 한구석 넘실거리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