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어포 / 이정 뱅어포 / 이정 뱅어포 한 장에 납작한 바다가 드러누워 있다 수 백 수천의 얇고 투명한 바다에 점 하나 찍어 몸이 되었다 무수한 출렁거림 속에 씨앗처럼 꼭꼭 박힌 캄캄한 눈. 눈. 눈 머리와 머리가 포개지고 창자와 창자가 겹쳐진 이 걸 무어라 불러야 하나 혼자서는 몸이랄 수도 없어 서로 기대고 잠..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토요일 오후 / 오탁번 토요일 오후 / 오탁번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딸과 함께 베란다의 행운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일 세상사람 저마다 눈을 뜨고 아주 바쁘고 부산스럽게 몸치장 예쁘게 하네 하루일 하루공부 다 끝내고 중고생 관람가 못된 장면은 가위질한 그저 알맞게 재미난 영화 팝콘이나 먹으며 구경하러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물방울의 역사 / 이영옥 물방울의 역사 / 이영옥 연잎에 떨군 물방울이 맑은 구슬로 또르륵 굴러가는 것은 연잎에 스며들지 않도록 제 몸 고요하게 껴안았기 때문이다 오직 꽃 피울 생각에 골똘한 수련을 건들지 않고 그저 가볍게 스치기만 하려고 자신을 정갈하게 말아 쥔 까닭이다 그러나 물방울의 투명한 잔등 속에는 얼마..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째보선창 할매별곡 / 최영록 째보선창 할매별곡 / 최영록 목포 대반동 째보선창 뒤 켠 바다를 목숨처럼 끌어안고 깡다리젓* 밴댕이젓 송어젓 육젓 파는 붙박이 언챙이 뻘둥할매 굵은 철사 동여 맨 항아리 속에는 지금 마파람이 아우성이다 어쩌자고 먹어줄 사람 하나 없는 저들만의 잔칫상을 차리는 것일까 테 맨 항아리 수북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징 / 이영식 징 / 이영식 우리 집 바람벽에 걸린 징 한 개, 크로키 된 내 얼굴이 표면에 새겨있지요 울의 한쪽이 끈에 꿰어 매달렸다가 채에 맞으면 音과 音을 물고 깨짐 없이 방짜로 울려 퍼지는데 그러니까 내 몸이 울림통이 되어 지이잉- 소리의 끈을 물고 가는 맛, 이거 別나답니다 아내는 내가 생각나거나 미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섬 / 박제영 섬 / 박제영 격렬돈지 비열돈지는 모르것고 섬이 원래 격렬하고 비열한 것잉께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다 뱃놈서방 뱃놈아부지 바다가 다 잡아묵고 독한년 징한년 소리 이십 년은 이골이 나믄 그나마도 쪼메 알 것잉께 섬은 무슨? 염빙하고 자빠짔네 어찌까이 슴 이야그는 와 혔당께로 저 작것이 슴 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 ♣ 詩그리고詩/한국명시 2010.02.03
조개의 불, 싱싱한 / 강희안 조개의 불, 싱싱한 / 강희안 죽어서야 입을 여는 게 어디 너뿐이랴. 물에 잠그기라도 하는 날이면, 슬몃 그의 비밀한 시간의 내력을 훔칠 수 있다. 짜디짠 어둠의 펄에서 앙당그리던 슬픈 가계가 보이고, 희디흰 각질에 방점을 찍은 강단의 길도 보인다. 파랑의 불길에 닫아거는 게 어디 문뿐이랴. 바람..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토란잎 우산 / 정윤천 토란잎 우산 / 정윤천 토란잎 우산 한번 받쳐보지 않은 사람과는 추억에 대하여 거래하지 않을 작정이네. 어쩌다가 빌어썼거나 빌려주었던 일 해결하러 가는 길 아니라면, 그에게라면 오리길인들 멀어 보일 것 같았네. 때로는 어느 후미진 길 모퉁이쯤이던가, 수수로운 바람의 손사래질처럼이나 ‘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
옥탑방 외 1편 / 서수찬 옥탑방 외 1편 / 서수찬 누군가 목련꽃 함박 핀 것을 보고 미친년 팬티 널어놓은 것 같다고 했는데 팬티 뒤에 내 방이 있는데 큰일 났습니다 아침마다 앞섶이 벌떡 일어나서 출근하는데 동네 여자들 팬티를 다 거둬다가 방 앞 빨랫줄에 온 동네 다 보란 듯이 걸어 놨다고 목련꽃이 피어 있는 동안에는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