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가작) - 물의 환각 / 노혜옥 2005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가작) 물의 환각 / 노혜옥 "몸을 짜악 쪼갠다고 생각해 봐.” 봉오리가 차츰 벌어지면서 소담스럽게 피어오르는 꽃 속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여인을 그는 그리는 중이다. 진자주색 모란꽃 이파리들이 눈앞에 다가온다. 그의 붓끝이 스칠 때마다 꽃들은 더욱 무르익.. 중단편 소설 2010.02.04
돌 / 김세형 돌 / 김세형 온몸이 주먹인 돌 평생 스스로는 주먹을 펴지 못하는 돌 누군가 오함마를 들고 와 내리쳐 깨부수어야만 마지못해 주먹을 펴는 돌 막상 돌주먹을 깨부수어 펴보면 먼지 한줌만 쓸쓸히 쥐고 있는 돌 누군가 깨부수기 전엔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돌 자신이 부처인 줄 모르고 있는 돌 돌부처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주흘산에서 외 2편 / 이기홍 주흘산에서 외 2편 / 이기홍 산과 산 사이 숲은 길들의 무덤이다 한 생을 흔들면서 걷던 몸들, 길은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리가 되고 고단한 삶들의 발자국도 제 몸속에 담고 있다 구름 지나가던 길가에 별자리가 숭숭 박혔고 폭풍이 머물던 길 끝엔 찢어진 깃발이 펄럭이고 빗물이 파놓은 마른 개울..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장터 / 서규정 장터 / 서규정 아이고 어쩌야 쓰까, 시끌벅적 오일장터에서 트럭바퀴에 하반신이 납작 깔렸던 남편의 으깨어진 불알을 신주 모시듯이 허공으로 바쳐 들고 이게 뭐여 하필이면 이것이 뭣이랑가 울부짖던 젊은 아낙의 그 지독한 손 떨림 산간 폭설에 허벅다리만한 생나무 부러지는 소릴, 소리 채 장작으..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시절, 불빛 / 이승희 시절, 불빛 / 이승희 불빛에 기대고 싶어지는 날, 혼자 늦은 저녁을 먹는다. 냉장고 문을 열고, 불빛 속에 손을 넣어 둥근 반찬통을 꺼내다 말고 저 불빛들, 다 길이다. 중얼거린다. 저녁이 산을 가만히 지우는 동안 나는 아무 소리 없이 밥을 먹었다. 불빛에 기대면 그늘이 된다, 어둠이 된다. 여긴 마치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북나무 외 1편 / 김영탁 북나무 외 1편 / 김영탁 전동차에서 바라본 사람은 어쩌면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를 바라보듯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 나무 같다 나무가 뿌리내려 있어야할 자리에 나무가 허공을 받치고 서 있어야할 자리에 사람은 유목민처럼 혹은 유랑자처럼 둥둥, 전동차 천정까지 떠다니는 것이다 그럴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관계 / 박성희 관계 / 박성희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뭇가지를 움켜쥔 채 잠들어 있다 한 마리의 동물이 아닌 한 잎의 나뭇잎처럼 나무는 코알라의 지문을 잎맥처럼 품고 있다 코알라가 온몸에 찍어대는 무늬를 제 몸의 무늬로 읽고 있다 호주 렙타일 파크 죽는 순간까지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 살아가는 코알라 물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달려라 도둑 / 이상국 달려라 도둑 /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쎄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冬至 / 김영산 冬至 / 김영산 - 김경숙 언니에게 팥죽을 쑤다 어머니는 우신다 마당가에 눈이 쌓여 희붐한 저녁나절 시장한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앉아 짧은 해처럼 가버린 언니를 생각한다 동생들 학비와 무능한 아비의 약값과 70년대말 쪼든 양심을 위해 십년이 지나도록 구멍난 생계를 뜨개질하지 못한 딸들을 위해..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
무광*외 1편 / 김영산 무광* / 김영산 시골집 토굴이 그립다 시방은 메워져 흔적조차 없는 토방 마루 곁에 파놓은 텅 빈 고구마굴, 서리 맞은 고구마순 거무튀튀 시들해지는 가실까지 아버지 키만큼 깊어 곰팡내 나는 습기 찬 어둠이 좋았다 우리 부모 병들어 칠 남매 숨어서 키우며 짓무르거나 상해갔지만, 겨우내 토굴 속 .. ♣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201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