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기억제’-박주택(1959∼ )

시인 최주식 2009. 12. 23. 23:33

기억제’-박주택(1959∼ )

 

 

저 저물녘 누워 있는 것들을 보라

파도는 출렁이고 노래는 물어물어 기억의 기슭에 닿는다

그리하여 철썩이고 철썩여 노래도 저물면

도시 저쪽에서는 이별한 자의 술잔과 빚에 쫓기는 고개들이 모여

간판으로 다시 태어나고 곱창집이며 호프집에는

밥과 술이 섞이듯이 강물 또한 흘러 떠가리라

(중략)

누워 있는 것들

병실이며 아파트며 강물에 등을 붙인 채

기억에 가위눌리며 흘러 떠가는 것들

기원이 되고자 돛이 흔들리는 포구에서

홀로 있음이 저려오는 새벽

아픈 자들이 모이는 마음의 처마 밑에

처소의 발자국을 저녁부터 찍어온 자들

왁자하니 떠들어 그 속에 침묵의 잔해를 감춰놓는다


날것, 이국과 원시와 기원을 찾아 떠난 낭만시대는 이제 끝인가. 일상 떨치고 천재 시인 랭보의 ‘취한 배’ 타고 닿은 곳이 고작 곱창집이며 호프집 술 바다여야 하는가. 간절하고 비장한 이 시의 어조와 단어들 제 기원은커녕 기억에도 닿지 못하고 흘러 흘러가는 안타까운 표정이어야 하는가. 정체성과 소통의 기저인 언어마저 최첨단으로 찢긴 이 시대에는.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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