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첫눈’ - 박남수(1918~94) 

시인 최주식 2009. 12. 24. 22:22

첫눈’ - 박남수(1918~94) 

 

 

그것은 조용한 기도.

주검 위에 덮는 순결의 보자기.

밤 새워 땅을 침묵으로 덮고

사람의 가슴에, 뛰는 피를

조금씩 바래주고 있다.

개구쟁이 바람은 즐거워서 즐거워서

들판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눈발은 바람 따라 기울기도 하지만,

절대의 침묵은 조용히 조용히

지붕 위에 내리고, 혹은

나뭇가지 위에 내리고,

혹은 인류의 가슴에도 내리는가.



아침 동이 트면, 세상은

빛나는 흰빛으로, 오예(汚濊)를 씻으라.


1973년 첫눈 오는 날 본지에 실린 시입니다. 성탄 전야엔 화이트 크리스마스, 첫눈 이미지 자연스레 떠오르는데 이 시 다시 한번 올려 드립니다. 첫눈과 성탄과 부활의 이미지, 참으로 정갈하게 겹쳐지고 있지 않습니까. 세월과 세상의 상심으로 더럽혀진, 혹은 분노로 덥혀진 피와 가슴 맑히려 조용히 조용히 첫눈 내리듯 그분 오시지 않았습니까.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