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나간 100년 다가올 100년
2010년은 조선왕조 멸망 100년, 6·25전쟁 발발 60년, 4·19혁명 50년이 되는 해다. 1910년 망국(亡國)은 민족 전체를 이민족의 발굽 아래로 몰아넣었고, 1950년 6·25전쟁은 같은 민족이 서로 죽이는 비극을 낳았으며, 1960년 학생혁명은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를 향하는 길에 젊은 피를 뿌렸다. 대한민국은 민족의 총 역량(力量)을 기울여 망국과 전쟁과 혁명의 격동 세월을 뚫고 세운 나라다.
지구상의 200여 나라 가운데 후발(後發)과 후진(後進)의 멍에를 걸머진 채 망국과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꺾이지 않고 21세기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는 한국·중국·일본의 동아시아 3국밖에 없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멀고 먼 아시아'라는 뜻의 극동(極東)으로 불렸던 동아시아는 현재 전 세계 GDP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세기'가 이제 바로 지척에 와 있다.
동아시아 3국 가운데 먼저 후진의 족쇄를 끊고 선진을 향해 내달린 것은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으로 국가 개조에 성공한 일본이었다. 반면 조선은 1884년 갑신정변을 비롯한 자주국가 건설 시도가 잇따라 좌절하고, 중국 역시 1898년 변법자강(變法自彊)혁명이 미완성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조선·중국과 일본 사이의 이런 개화(開化)의 시간 격차가 조선과 중국을 일본의 식민지와 반(半)식민지로 굴러 떨어지게 한 원인이었다. 그 후 일본은 조선과 중국을 가까이해선 안 될 악우(惡友)로 비웃으며 "일본의 미래는 아시아의 한 끄트머리에라도 서양식 제국을 건설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외길을 치달았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2009년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공동의 화두(話頭)로 나눠 갖자고 한국과 중국을 설득하며 일본의 진로를 '아시아를 벗어나 서양으로'에서 '서양을 벗어나 다시 아시아로' 또 한 번 크게 틀고 있다.
100년 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은원(恩怨) 관계로 묶였던 동아시아 3국은 21세기 들어 협력적 공존 시대의 파트너 관계 형성을 재촉받고 있다. 20세기 일본·한국·중국 순서로 달리던 레이스의 모습도 중국·일본·한국 순으로 바뀌어가는 양상이다. 중국은 19세기 말 이후 100년 가까이 일본을, 1970년대 이후 20년간 한국을 교과서로 삼아왔던 국가발전전략을 벗고 중국판(版) 발전교과서를 새로 써가고 있다. 세계 문제를 미국과 단둘이 한 테이블에서 논의하는 현재의 G2 위상(位相)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을 제치고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팍스 차이나(PAX CHINA·중국의 시대)'의 꿈도 함께 부풀고 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적은 인구, 좁은 국토'라는 한국의 인구·지리학적 여건은 달라진 게 없다. 21세기 개막과 함께 동아시아 3국의 목표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에서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로 바뀌었다. 여기서 한국이 버텨 내려면 민족 통일 과제를 현실적으로 풀어가는 데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국민 전체의 지적(知的) 역량을 최대한으로 업그레이드해 결집하는 교육혁명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핵무기를 들고 2300만 주민을 배고픔으로 내몰아 온 김일성 유일신교(唯一神敎)의 북한 운명은 여전히 예측불허(豫測不許)다. 오늘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고, 다시 10년 목숨을 이어간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1980년대 말 동구권 붕괴와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기근(大饑饉)을 겪으며 '식물 국가적' 생존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 정책도 북한 핵에 대한 단기적 처방과 북한 체제의 급변에 대비한 중·장기적 통일 대책을 적절히 혼용(混用)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매들기 처방이 이미 위험 상태에 다다른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더욱 심화(深化)시킬 경우, 그것이 과연 장기적 통일 정책에 도움이 될지 여부를 심사숙고해 볼 일이다.
중국의 한반도 통일관(統一觀)이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은 강화되고, 통일 문제의 중국화(中國化)도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북핵 단기 처방과 중·장기적 통일 전략 사이의 모순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짜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북핵의 불가역적(不可逆的) 불능화(不能化)를 달성하는 수단은 궁극적으론 통일밖에 없으며, 통일은 북한의 대한민국 의존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높여가는 과정에서 눈사태처럼 닥쳐올 것이라는 공통인식이 긴요하다.
세계 2위,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통일의 시기와 방법을 우리 힘만으론 확정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대한민국의 활로는 국민의 지적 역량을 배가(倍加)하는 교육혁명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의 교육혁명 논의는 좌우의 이념적 진영(陣營)논리에 파묻혀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라는 동아시아의 중심 화두에서 크게 벗어나 이념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려 왔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극단적 친북(親北) 세력을 제외한 우파와 좌파는 근대화를 우선할 것이냐 민주화를 우선할 것이냐는 우선(優先)순위 선택을 둘러싼 대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 사이를 갈라놓았던 담벼락은 산업화 성공에 뒤이은 민주화의 성숙으로 이미 허물어졌다. 2010년 대한민국을 향해 밀려드는 긴급한 화두는, 어떻게 하면 한국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의 다른 나라와 겨뤄 21세기 선두에 나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은 '서양 따라잡기'에 나선 지 100년 만인 1960년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일본이 겪고 있는 장기 침체는 나라와 교육의 틀을 '서양 따라잡기'에서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로 바꾸는 대전환을 제때에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때를 놓쳐선 안 된다.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에 일정한 성과를 이룬 지금이야말로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로 나라의 틀을 바꿔야 하고, 그 핵심이 교육혁명이다.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라는 시대의 과제를 우리 모두가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갈 실마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교육혁명도 좌·우의 낡은 경계를 허물어뜨릴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라는 시대적 명제(命題)를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명제 안에서 교육 논쟁의 두 축(軸)인 자유와 다양성, 기회의 평등과 개성의 실현은 상호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계로 통합될 수 있다. 바로 그 바닥에 이 땅의 보수 세력이 새롭게 경신(更新)할 수 있는 길과 진보 세력이 제대로 된 부활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같이 깔려 있다.
망국과 전쟁과 혁명의 각기 다른 주기(週期)가 돌고 또 돌아 한곳에 모인 2010년, 우리 모두 망국의 설움을 건국의 기틀로, 전쟁의 폐허를 경제 대국을 향한 정신적 에너지로, 거리에 뿌린 혁명의 젊은 피를 성숙한 민주국가로 뻗어가는 대로(大路)를 닦는 힘으로 전환시켰던 민족의 저력(底力)을 '세계의 선두에 나서기'에 다시 쏟아넣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조선일보도 망국 국민의 비탄 속에서 태어나 전쟁의 폐허 위에서 국민과 더불어 신음하고, 민주 혁명의 함성에 국민과 하나 된 기억을 나이테에 새기며 2010년 창간 90년을 맞았다. 다가오는 2020년 '세계의 선두에 선 대한민국'의 감격을 국민 곁에서 함께 누리며 조선일보가 창간 100년을 자축(自祝)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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