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여백’ 조창환(1945 ~ )

시인 최주식 2010. 1. 12. 22:24

여백’ 조창환(1945 ~ )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몇 알

푸른 하늘에서 마른번개를 맞고 있다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지고

눈부신 적멸(寂滅)만이 바다보다 깊다

저런 기다림은 옥양목 빛이다

칼 빛 오래 삭혀 눈물이 되고

고요 깊이 가라앉아 이슬이 될 때

묵언으로 빚은 등불

꽃눈 틔운다

두 이레 강아지 눈 뜨듯


이 차갑고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뭇 새 소리마저 잦아든 언 하늘 빈 들녘. 홀로 내걸린 높다란 가지 끝 빨간 홍시 몇 알. 이 차갑고 명징한 계절, 여백의 시그널. 유채색 봄 예비하는 하늘과 땅의 묵언의 등불. 인동(忍冬)하는 사람들 천지간 한마음으로 저리 까치밥 감 몇 알 남겨두었겠거늘.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