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소(謫所)’ - 신현정(1948∼2009)
나, 세한도(歲寒圖) 속으로 들어갔지 뭡니까
들어가서는 하늘 한복판에다 손 훠이훠이 저어
거기 점 찍혀 있는 갈필(渴筆)의 기러기들 날아가게 하고
그리고는 그리고는 눈 와서 지붕 낮은 거 더 낮아진
저 먹 같은 집 바라보다가 바라보다가
아, 그만 품에 품고 간 청주 한 병을 내가 다 마셔버렸지 뭡니까
빈 술병은 바람 부는 한 귀퉁이에 똑바로 세워놓고
그러고는 그러고는 소나무 네 그루에 각각 추운 절 하고는
도로 나왔습니다만 이거야 참 또 결례했습니다
나 또한 그랬답니다. 바다 날아 먼 섬 위리안치(圍籬安置) 그 집까지 가 그만 술병만 비웠답니다. 원악절도(遠惡絶島)에 갇혀 눈 뒤집어쓰고도 꼿꼿이 하늘 향한 소나무 기개. 그에 뒤지지 않는 추사 김정희의 고고한 인간적 품위에 질려 그만 술만 비우고 왔답니다. 눈 들어 보면 그대로 한 폭 세한도인 겨울세상. 이 시 참 따뜻하지요. 못난 우리 인간세상도 이리 보니 참 정겹지요.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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