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조창환(1945 ~ )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홍시 몇 알
푸른 하늘에서 마른번개를 맞고 있다
새들이 다닌 길은 금세 지워지고
눈부신 적멸(寂滅)만이 바다보다 깊다
저런 기다림은 옥양목 빛이다
칼 빛 오래 삭혀 눈물이 되고
고요 깊이 가라앉아 이슬이 될 때
묵언으로 빚은 등불
꽃눈 틔운다
두 이레 강아지 눈 뜨듯
이 차갑고 명징한 여백 앞에서는
천사들도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뭇 새 소리마저 잦아든 언 하늘 빈 들녘. 홀로 내걸린 높다란 가지 끝 빨간 홍시 몇 알. 이 차갑고 명징한 계절, 여백의 시그널. 유채색 봄 예비하는 하늘과 땅의 묵언의 등불. 인동(忍冬)하는 사람들 천지간 한마음으로 저리 까치밥 감 몇 알 남겨두었겠거늘.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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