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ESSAY]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회합니다신연아 가수·그룹 빅마마

시인 최주식 2010. 1. 23. 19:45

[ESSAY]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회합니다

  • 신연아 가수·그룹 빅마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곳은 공연장이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에 아버지를 미워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기라도 한 것처럼
죄책감에 온몸이 떨렸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 그날의 있었던 일들과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본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이리저리 돌려가며 씹어본다. 낮 동안 내가 드러내 보였던 전의(戰意)의 뒤에는 소심함이 숨겨져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곱씹은 하루 중에 삼킬 것은 삼키고, 목에 걸리는 것들은 모두 일기장에 토해낸다.

느닷없이 과거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어릴 적에는 전에 살던 동네가 갑자기 그리워져 한걸음에 찾아 나선 적도 있었다. 중학생 때 같은 반 장애아동의 장난에 화를 냈던 것이 후회되어 자책하기도 한다. 주로 떠오르는 과거는 대개 흑백 사진 한 장씩 정도의 기억에 불과하다. 그 사진 한 장의 기억들 대부분은 나의 '부족한 표현'과 관련된 것들이다. 나는 내 입장을 말하거나 상대의 제안을 거절할 때 늘 서너 마디로 끝내버리곤 한다. 이런 버릇이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뿌리가 깊다. 멋쩍어서 짧게 설명한 것이 상대에게는 냉정하게 비춰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후부터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서툴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후회되는 순간이 있나보다. 어떤 이는 내게 몇 년이 흐른 뒤 사과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세월이 지나 기억이 다 바래진 어느 날 느닷없이 사랑의 고백을 하기도 했다. 모두 나보다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난 아직도 사과하지 못하고, 고백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고 기껏해야 일기장에 혼자 긁적이는데 그들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고, 연결을 기다리고, 인사를 나누고, 시간의 거리를 좁히고, 이야기를 꺼내는 긴 과정을 견뎌낸다. 예측할 수 없는 상대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도 디디고 일어선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지나간 것은 쉽게 미화된다. 하지만 그 아련한 기억 중에 떠올릴 때마다 유독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정말 후회되는 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곳은 공연장이었다. 이틀 후에 있을 공연 리허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가까운 시골에 머물고 계셨지만 뵈러 가지 못한 게 6개월이 넘었던 때였다. 공연과 준비로 바빴지만 핑계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여러 가지 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원래 무뚝뚝하신 성격에 병까지 겹쳐 더 말이 없어지셨다. 30년 군대생활의 권위의식이 몸에 밴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기억도 차츰 흐려져 집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파출소로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날도 종종 생겼다. 마지막 몇 해 동안 아버지는 거의 외출을 못하시고 잠만 주무셨다. 아버지 간호에 지쳐가는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아버지를 귀찮아하며 미워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이 와도 그다지 큰 충격은 없을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이 왔을 때 내게 온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내 머리와 가슴엔 죄책감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내가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 때의 미움에 대한 죄책감과 자주 찾아가지 못한 후회에 온몸이 떨렸다. 아버지는 엄부(嚴父)이셨지만 막내딸인 내겐 예외였다. 늘 믿어주셨고, 자주 볼 수 없는 웃는 얼굴도 내겐 가끔 보여주셨으며, 음악을 하겠다고 나설 때도 하고 싶으면 하라고 자유를 주셨다.

상(喪)을 치르고 한동안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렸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날에 대한 후회가 산다는 것을 하찮게 생각하게 할 정도로 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조금씩 떠올리고, 그때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 이제 혼자된 엄마에게만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엄마가 아버지의 마지막 달에 대소변까지 받아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자식에게 알리지 않고 고통을 겪어냈던 두 분의 모습을 생각하면 목울대가 저려오고 가슴이 미어진다.

엄마가 가장 즐거워하실 때는 내가 전화 드리고, 전등을 갈아드리고, 내복을 사드리고, 용돈을 드리는 때가 아니다. 엄마가 정말 흡족해하실 때는 내가 엄마를 이해할 때이다. 자식은 너무 늦게 느끼고 너무 늦게 철이 든다. 아버지를 외롭게 했다는 후회가 내가 어머니를 외롭게 하지 않게 하고, 그래서 나중에 또 후회하지 않게 해주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뒤돌아보지 말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지루하고 힘 빠지는 일일 수 있다. 지나간 건 빨리 털고 일어서야지 무엇하느냐고 스스로 채찍질해야 할 것만 같은 바쁜 세상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옛일을 떠올리고 다시 그려보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그 시간은 파문 하나 없는 연못과 같다. 그 고요함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이제 후회는 자책이기도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일이기도 하다. 집안을 청소하듯 마음을 닦아낼 시간이 필요하다.

창가에 맺힌 빗방울과 외로이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문득 사람보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말없이 뒷짐 진 채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외로운 뒷모습이 흑백사진처럼 남아있다.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 또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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