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修羅 /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느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두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수라 : 싸움을 일삼는 귀신
* 싹기도 : 흥분이 가라앉기도
* 가제 : 방금. 막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닥불 / 백석 (0) | 2010.01.26 |
---|---|
女僧 / 백석 (0) | 2010.01.25 |
이, 도둑놈의 꽃아 / 고영민 (0) | 2010.01.25 |
밥그릇 / 고영민 (0) | 2010.01.25 |
나팔꽃과 개미 / 고영민 (0) | 2010.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