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밭 / 이향지

시인 최주식 2010. 1. 26. 00:01

/ 이향지 
 
 
 그녀는 밭을 팔았다 당산나무 아래 앉아 한숨을 쉬고 정월 지난 보리

이랑을 오래 밟아주고 밭 파시오 조르던 사람을 찾아갔다


  밭 판 돈으로 딸은 서양사학과에 등록을 했다 밭 판 돈을 들고 간 빚

쟁이는 다시 오지 않았다 밭 판 돈으로 남편은 담배를 사고 막내는 운

동화를 사고 대학을 마친 아들은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돌아

오지 않았다


  그녀는 마른 멸치를 받아서 화물선을 탔다 이제는 바다가 밭이다 이

제는 마른 멸치를 팔아서 보리를 사고 녹두 콩 팥 솎음배추를 사고 시

금치를 사고 풋고추 파 애호박 늙은 호박 고구마줄기까지 사고 땔나무

를 사고 남편 담배 값을 주고 막내딸 수업료를 주고 팔다 남은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서 물밥을 삼키고 다시 마른 멸치를 받으러 간다


   그녀가 판 밭 아래로 길이 지나간다 그녀가 한숨 쉬던 당산나무 아래

까지 도시가 올라온다 그녀는 바다 앞에서 다시 한숨을 쉬고 마른 멸치

를 팔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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