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 강산 낙화유수 / 최을원
길가 철책 너머, 오래 방치된 자전거를 안다 잡풀들 사이에서 썩어 가는 뼈대들, 접혀진 타이어엔 끊어진 길들의 지문이 찍혀 있고 체인마다 틈입해 화석처럼 굳은 피로들, 한때는 자전거였던 그 자전거
한 사내를 안다 새벽, 비좁고 자주 꺾인 골목을 돌아 돌아서 우유 한 병 조용히 놓고 가던 반백의 왜소한 사내, 수금할 때면, 고맙구먼유, 열 번도 더하던 사내, 유난히 부끄럼 많던 그 사내, 무섭게 질주하는 도시, 어느 초겨울 미명의 새벽 차도를 끝내 다 건너지 못한 그 사내
그 노래를 안다 빙판 언덕배기 나자빠진 자전거, 깨진 병 쪼가리들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앉아 있던 그 노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고 흘러
낙엽 한 잎 강물에 떨어져 멀리도 떠내려 왔는데, 가끔씩 새벽 속에서 흥얼흥얼 노랫가락 들리고 창을 열면 낡은 짐자전거 한 대 저만치 가는, 참 오래된 그 노래를 나는 지금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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