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미시령을 향해 달리다 / 최을원

시인 최주식 2010. 1. 26. 23:20

미시령을 향해 달리다 / 최을원

 

                                   - 각도

 

북한강을 따라 올라가 홍천, 인제를 지나

미시령을 향해 달렸네

좁은 국도를 시속 100km로 코너링하다 보면

참 순간이구나, 하는 생각

약간의 핸들 각도에 좌우되는 生

급하게 꺾인 곳에 예각을 찍고

길 밖으로 나간 흔적 하나 선명했네

강변의 갈대들은 모두 지친 머리를 꺾고

이 각도를 보라, 이 각도를 보라

자꾸만 속살거렸네

러브호텔에 욕망을 주차한 많은 차량들

어느 지점에서부터 꺾이기 시작했을까

불면의 밤마다 미시령 너머를 막연히 사모하는 나도

꺾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세상은 점점 뜸해지고

나도 뜸해져 갔네

마음의 각도 사이에서 미시령은 높아만 가는데

구부러진 것들은 모두 슬픈 것

위태로운 각도를 품은 것

죽어도 좋아, 페드라, 페드라를 외치며

내 차는 스스로도 두려운 속도로

中年,

늦겨울 속을 질주해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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