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발자국 / 유홍준
봄가뭄 보름에 그만
물 가둬놓은 못자리, 논바닥이 때글때글 말랐다
못자리 만든다고 내 맨발이 딛고 다닌 발자국 옴폭한 곳에
올챙이 새끼들이
오골오골 말라죽었다
아! 내 몸뚱어리 무게를 싣고 다녔던 발자국 속이
저 올챙이들의 生死가 걸린
궁지였다니,
울음으로 밤 하나 새워보지도 못한 저것들이
떡잎 같은 발꿈치 여린 울대 더 이상 적시지 못하고
죽어 갔다니,
봄가뭄 보름 끝에 기어이
후드득 비가 듣는다 금방, 깊은 발자국 속을 채운다
반갑다 어미개구리 哭소리......
봄가뭄 보름이 저 울대 저렇듯 맑게 단련시켜 놓다니,
바람 자는 내일 아침이면 무논 가운데 멍하니 서 있는 백로처럼
죽음이 지나간 물 속의 내 발자국
물끄러미 들여다 볼 수 있겠다
무논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백로가
내 발자국 속의 주검 집어 올려 삼키는 것, 볼 수 있겠다
계간 <시와시학> 200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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