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동네 신발들은 공손하지 않다 외 1편 / 이명윤

시인 최주식 2010. 1. 28. 21:45

동네 신발들은 공손하지 않다 외 1편 / 이명윤

 

먼저 신발1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도 길바닥 어딘가에 노숙 중이다
그의 아내는 울며 개집에 앉아 있다
신발2는 성격차이로 갈라섰다 제법
메이커 있는 커플인데 서로 끈 색깔이 다르다 했다
소문난 해커인 신발3, 남의 집 방문을 열고 들어가
개인정보침해로 구속됐다
내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커피 배달중인 그녀
신발4를 빼 놓을 수 없다 껌, 아니
보도블록을 딱딱 씹으며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다
훤히 드러난 뒤태를 훔치며 신발5가 뛰어간다
신발1의 아들인 신발5는 깡통을 걷어차는 일이
주특기, 사춘기를 겪고 있다
신발6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상갓집에서 다섯 시간째
다른 신발들의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다
길가 신음소리 내며 걸어오는 신발7은
석 달째 투병중인 노인이다
몸에 담석이 여러 개 박혀 있는데
아무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신발8, 아아, 신발의 본분을 잊고 거실을 날아
거울을 박살냈다 그치지 않는 고성이
밤을 북북 찢어 놓는다
누구도 아침을 낳지 못했으므로
그 동네 신발들은 서로 인사하지 않는다
신발3의 모친인 신발9의 집을 엿본다
늘 그렇듯 방문 앞에 앉아 빈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에 눈빛 사나운 개집이 있다
개밥그릇 하나
울음소리 새지 않도록 한나절 뒤집혀 있다.

 

 

안녕, 치킨 / 이명윤

 

이번엔 불닭집이 문을 열었다 
닭 초상이 활활 타오르는 사각 화장지가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더 이상 느끼한 입맛을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공익적 문구를 실은 행사용 트럭이 학교 입구에서 
닭튀김 한 조각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불닭집 주인의 화끈한 기대를 
와와, 맛깔나게 뜯어 먹는다 
삽시간에 매운바람이 불고 꿈은 이리저리 뜬구름으로 떠다닌다 
낙엽, 전단지처럼 어지럽게 쌓여가는 십일월 
벌써 여러 치킨 집들이 문을 닫았다 
패션쇼 같은 동네였다 가게는 부지런히 새 간판을 걸었고 
새 주인은 늘 친절했고 건강한 모험심이 가득했으므로 
동네 입맛은 자주 바뀌어 갔다 
다음은 어느 집 차례 
다음은 어느 집 차례 
질문이 꼬리를 물고 꼬꼬댁거렸다 
졸음으로 파삭하게 튀겨진 아이들은 종종 묻는다 
아버지는 왜 아직 안 와 
파다닥 지붕에서 다리 따로 날개 따로 
경쾌하게 굴러 떨어지는 소리 
아버진 저 높은 하늘을 훨훨 나는 신기술을 개발 중이란다 
어둠의 두 눈가에 올리브유 쭈르르 흐르고 
일수쟁이처럼 떠오르는 해가 
새벽의 모가질 사정없이 비튼다 
온 동네가 푸다닥, 
홰를 친다.

 

 

이명윤 시인

 

1968년 경남 통영 출생. 부산대 수학과 4년 중퇴.
2006년 <시마을문학상><전태일문학상>수상
2007년 시안 신인상
시마을동인. 시산맥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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