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대 / 변삼학
척추골 제거 수술을 받은 아버지
복대에 의존한 지도 며칠이다
처음 화장실 수발을 드는 날
성긴 흰 솔밭에
서리 맞은 끝물 고추를 보았다
한때 한껏 부풀어 북에도 남에도
뿌렸던 그 씨앗주머니
태엽이 다 풀린 시계추로 흔들렸다
인공 척추를 나사못으로 의지해서라도
한 치의 생을 감아내고 싶었던 아버지
고향 북녘 소식이 궁금해
저문 청각으로 한껏 높인 텔레비전 볼륨에
놀란 병실 유리창, 진저리를 친다.
병상에 누워 가물가물 TV를 보시던 아버지
곧 경의선 개통이 될 것 같다는 그 말이
귓가를 맴돌아 고향의 달이라도 떠오른 것일까
돋보기 너머 처졌던 눈가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귀향의 실마리에 지팡이 같은 밀대를 잡는다
치렁치렁 밀대에 얽힌 생명선을 타고 떨어지는
링거액, 망향의 눈물처럼
온몸으로 받으며 물리치료실로 간다
한 걸음 옮겨놓을 때마다
떨어지는 아버지의 메마른 독백,
내 허리의 복대를 풀었을 때, 삼팔선 허리도…
시집"자갈치 아지매"[문학의 전당]
![](http://blogfiles12.naver.net/data29/2008/2/11/283/%BB%E7%BA%BB_-_%BA%AF%BB%EF%C7%D0_gulsame.jpg)
변삼학 시인
경남 합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 문예창작과 수료
1997년 한국문학예술 소설부문 신인상 당선
2003년 제1회 CJ문학 은상 수상
2004년 제1회 호연재 문학상 금상수상
2004년 계간 <문학마을>로 등단
2006년 시집 <자갈치 아지매>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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