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외 1편 / 조연호
비 내리던 오월이 그쳤다 숲이 가난한 자들의 빈 그릇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모서리에 몰려서서 심장이 저울질 당하는 소리를 들었다. 부드러운 비에 꽂혀 하늘이 아프게 하수구까지 걸어온다. 쥐들의 지붕타는 소리가 엄마의 재봉틀타는 소리보다 크다. (뜻도 없이 문이 밀쳐지고 한번쯤 분노해야 할 일이 없을까. 나는 그리다만 그림에 붉은 명암을 넣었다.) 어쩌면 세상은 평안하고, 이렇게 될 줄 예감하면서 주일이면 동네 확성기에서 찬송이 쏟아졌을 것이다. 죽은 꽃과 죽은 바람을 차마 볼 수 없어 燈을 켜지 않았다.
오늘은 늦은 식사로부터 와서 늦은 식사로 떠난다. 붉고 지친 꽃잎 위로 지하 방직공장 실먼지가 희미하게 올라온다. 늦은 식사. 우는 엄마들, 햇복숭아를 사들고 칠팔월로 훌쩍 가버리는 오월. 분수대에 손을 넣고 바람의 패총을 줍는다. 덜 마른 기억의 껍질들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진다. 앙천의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 한번쯤 분노해야 할 일은 없는가. 비 갠 하늘빛을 따라 느린 삶을 옮기는 달팽이와 그의 늙은 집과 그의 집이 옮겨가며 뒤에 반짝이는 것들이 함께 모두 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시집 - 죽음에 이르는 계절 (2004년 천년의 시작)
물밑의 피아노 / 조연호
누나가 바늘에 꿴 실로 글자를 쓴다, 작은 집들이 산턱에서 사라진 후 케이블카가 그 위를 종일 왕복하고 있었다. 누나, 피아노들이 떠오르고 있어. 앞코가 찢어진 신발 속으로 물이 드나들고, 누나의 글씨쓰기는 앞과 뒤가 하나의 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누나가 쓴 글자는 한없이 느려져 겨울이 되어서야 한 장의 편지가 될 것이다. 억울해 억울해 지덕노체 4H구락부 마크가 찍힌 무너진 집 벽을 끌어안고 청년이 울 때 그의 나이 많은 두 형제는 발톱을 깎고 있었다. 생애 이렇게 눈부신 날, 누구나 자기 눈을 찌른 첫 번째 사람이 되어간다. 내가 누른 검은 건반을 누나의 흰 건반이 감쌀 때, 피아노의 다리들은 물 밖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여름과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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