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오동나무 열쇠 / 김남수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32

동나무 열쇠 / 김남수

 

오동나무 가지에 열쇠가 걸려있다

누군가 길에서 주운 열쇠를 나무에게 맡겨놓고 갔다
얼마나 열고 닫았는지 구부러진 열쇠를 가지가 휘도록 들고 서있다
건너편 천주봉 세탁소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주봉씨는 오동나무 가지를 끌어당겨 뽕짝 풍으로
구겨진 나뭇잎만 다림질한다
겨울이 깊어도 주인은 오지 않고
녹슬어 가는 열쇠를 오며가며 들여다본다
나무 속에는 누가 있어
저물도록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눈발 흩어지는 골목에 서있는 그를 찾아가
식어가는 몸을 여기저기 만져본다
가느다란 선율 한 줄 새어 나온다
궁금증이 노크를 하자 기억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을까
툭. 끊어지는 가야금소리
손에 잡히는 건 뭉툭뭉툭한 옹이들
내 몸의 온기 나누고 싶어 등을 맞대자
뿌리 쪽에서 물오르는 소리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골목이 따뜻하다
올려다본 하늘엔 겨울에도 얼지 않은 잠언 알갱이들
늙은 오동나무 꼭대기에서 노랗게 익어가고
지나가던 바람이 쩔렁, 녹슨 열쇠를 흔들고 간다

 

'다층' 2008.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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