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황송문의 여름에세이 / 맷방석 밤하늘

시인 최주식 2010. 1. 31. 21:25

황송문의 여름에세이

 

맷방석 밤하늘 
 
아득함에 미칠 것 같았던 별들
그리운 이도 그 먼곳에 계시겠지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밤하늘의 은하수와 별떨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런 여름밤이었다. 아버지는 마당가에 맷방석을 펴고, 할아버지는 그 곁에 모깃불을 피웠다. 소보록히 쌓아놓은 보릿대에 불을 붙인 다음, 쑥풀을 한 다발 얹어놓으면 파르스름한 실연기가 쑥풀 특유의 냄새를 풍기면서 피어오르다가 옆으로 퍼져나갔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옥수수와 감자를 쪄서 내오셨다. 아버지는 이웃집 농부들과 더불어 얘기를 깊여 가다가도 판소리 한 대목을 뽑으시기도 했는데,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나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다가 잠이 들곤 하였다.
 잠결에 간간이 깨어 보면, 할머니는 염불을 하시면서 부채 끝으로 나의 팔이나 다리 부분 여기 저기를 톡톡 치시면서, 매운 쑥연기 사이로 날아드는 모기를 쫓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문득 문득 별을 보았다. 아득히 멀리 올라갔다가도 눈으로 확 달려드는 별, 나는 그 별에서 막연한 동경 같은 그리움에 젖곤 하였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아스라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 밤하늘의 별들을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약 2000억 개로 추산되는 그 많은 별들을 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우주의 끝까지는 고사하고, 하나의 은하의 지름만을 통과하는 데에도 10만 광년이 걸린다니, 상상만 해보아도 그 아득함에 미칠 것만 같았다.
 별이 아슴푸레 멀리 있듯이, 그리운 사람들은 먼 곳에 있다. 모깃불을 피우시던 할아버지도, 판소리 가락을 뽑으시던 아버지도, 시래기국을 잘 끓여주시던 할머니도 저승으로 떠나시고 별들만 총총 떠서 아스라이 반짝인다.
 맷방석에 누운 채, 맷방석만한 하늘을 올려보다가 할머니 무릎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침 뻐꾸기 소리에 깨어보면 나의 몸은 영락없이 마루 위의 모기장 속에 있었다.
그 근육으로 꼬인 팔, 그 손으로 나를 안아 모기장 속으로 옮기시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리움의 대상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있다.
 나의 추억 속에 살아있는 그 맷방석 위의 밤하늘, 그 맷방석만한 두레로 떠있는 밤하늘은 전기문명에 의해서 말살당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의해서 소외당했다.
 그리하여 메마른 정서로 인해서 정신춘궁기를 맞게 되었다. 정신적인 보릿고개, 밤하늘의 별을 볼 줄 모른 채 늙고 죽어 가는 천애의 고아가 된 것이다.
 
 시인.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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