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집의 잿가루에서 꺼내 온
이 문장은
번갯불의 타버린 혀이다
산계곡의 얼음장이 갈라터지는 밤,
저수지 저쪽 기슭에서 뻗쳐오던 힘과 이쪽에서 뻗어가던 힘이
맞부딪힌 자리, 순식간에 얼음 밑바닥까지 칼금처럼 새겨지는
이 문장은
번갯불의 섬광으로 눈먼 자의 주술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나는
이 길이 등 뒤에서 흘러왔음을 알고 있으니,
죽음의 혀를 불태우고 일어선
이 문장은
비단꽃무늬를 얻었다가 비단꽃무늬로 허물어진 뱀의 허물이다
제 살가죽을 가시처럼 찢고 솟아오른
이 문장은
살모사처럼 제 어미를 물어 죽였다 그 이야기를
무심코 거기서 끝냈던 것인데 눈이 그쳤다 비로소
얼어붙은 입, 그리하여 이 문장은
누대累代에 걸쳐 완성된 피의 철갑鐵甲이며
끓어오르다 물러터진 진흙의 후계자이다 눈 내리는 벌판에서 나는
그 어떤 말도 들은 바 없는데,
내 이렇게 깜깜하게 눈멀어, 아무래도 이 문장은
빛이 나에게 준 상처, 빛의 검劍이라고 말하는 게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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