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의 사랑 -허수경(1964~ )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젊은 시인답지 않게 곰삭은 시의 가락 참 좋았었지. 이 시인의 가락에 실리면 사랑의 아픔도 가을 햇살처럼 환했지. 사랑이 어디 남녀 간의 일뿐이겠는가. 겹겹이 굽이이고 그늘진 우리네 삶 자체가 사랑이요 아픔인 것을. 이 시인 그런 인생의 굽잇길 아리랑 고갯길같이 구성지게 넘는 시 참 좋았지. 아픔과 체념이 공터에 뜬 무지개같이 아름다웠지. <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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