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겨울 들판을 걸으며 중 -허형만(1945~ )

시인 최주식 2010. 2. 3. 21:53

겨울 들판을 걸으며 중 -허형만(1945~ )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략)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짧아서가 아니라 2월 이미지는 아무것도 없는, 겨울 들판 같은데. 그래 자연과 한 몸으로 살던 인디언 수우족은 ‘홀로 걷는 달’이라 불렀던가. 홀로 겨울 들판 걸으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매운 바람 다 맞고 난 후 움트는 희망 몸소 체험하란 달일까. 추운 것들끼리 오종종하게 모여 서로 감싸 안는 체온들이 따스운 햇살 부르는 2월.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