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크로마키 / 진재남

시인 최주식 2010. 2. 5. 23:46

크로마키 / 진재남

 

 버스가 더는 진입할 수 없을 만큼 적설량이 많은 마을이었습니다. 눈이 그친 후 이삼 일이 지나야 버스가 운행되는 곳이 있다면 그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대설주의보가 적중하는 날이면 온 땅이 하얗게 바리케이드를 쳐서 오로지 맨몸으로만이 닿을 수 있는 저 깊은 산기슭의 외딴 마을이 그 백양리였습니다. 사방이 흰 눈에 뒤덮여 길과 나무와 집을 분간하기 어렵고 외부와의 물리적인 교류가 불가능할만큼 고립돼버리는 그 마을 홍설면 백양리로 나는 걸어 들어갔습니다.겨울이면 눈 오는 날로 그득한 백양리에 몇 차례나 더 눈이 내릴는지 어림잡아보진 않았습니다.

 

아직은 1월 하순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지역에 사흘 동안 계속될 대설주의보만은 숙지해두었습니다. 하지만 백양리 입구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 승객을 하차시키고 질척거리는 시멘트길을 거칠게 유턴하는 홍설여객 58번 버스는 퍽이나 낯설었습니다. 대설주의보는 아무런 효용가치도 발휘하지 못하고 눈길 한복판에 내쳐지는 나를 방관했습니다. 버스기사는 백양리의 도로사정을 설명하며 승객을 타이르려고 들었지만, 정작나는 눈 쌓인 논밭과 저 멀리 눈발 자욱한 산경에게 설득 당했습니다. 아, 저래서 버스가 들어갈 수없겠구나, 내 두 발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라고 말입니다.

 

백양리의 겨울을, 겨울이 몰고 온 버거운 눈길을 겪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퍽이나 오랜만이어서 잠시 머뭇거려야 했습니다. 바람이 불규칙적으로 불어대고 있었습니다. 눈송이들이 이리저리흩날렸고 더러는 이미 땅에 내려앉은 눈까지도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희부연 하늘은 어떤이물질도 끼여 있지 않았지만 백양리 방향의 하늘은 채도가 낮아보였습니다. 그 아래로 희끄무레한비탈길 하나가 야산 사이를 휘어져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비탈길을 따라 두세 개의 크고 작은 고개를 넘으면 백양리에 다다른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망설였습니다.

 

다른 길을 생각해보려했던 것인데 야산 뒤로 꼬리를 감춘 저 비탈길 밖에는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비탈길에서도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막막한 풍경 속에 삽입되기를 주저하다가 이내조용히 발을 들여놓는 한 여자가 있었다면 그건바로 나일 겁니다. 버스에서 내려 백양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그 두 아주머니를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 얼굴을 봤다면 대번에‘형섭씨네 막내딸’이라고 호칭했을 것입니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저만큼 가다가 고개를 돌려나를 쳐다봤지만 여전히 못 알아본 눈치였습니다. 내가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눈 밑까지 목도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으니 알아채지 못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면 형편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서 한참을 서있었던 이유도 두 아주머니를 먼저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걷게 된다면 틀림없이 말을 걸어올 테고 어쩐 일로 왔냐는 질문에 나는 비참한 거짓말을 창작해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뒤를 돌아본다 해도 야산과 언덕에 가려 내가 보이지 않을 때쯤에 나는 그들이 거쳐 간 눈길을 밟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추위를 안 타는 편이어서 영하 8도 안팎의 공기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더 추워

지리라는 증거가 보이고 있었습니다.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것입니다. 뭉쳐지지 않고 서로 마찰하는 눈 결정들이 많다는 뜻이었습니다. 함수량이 적은 건성눈이 내리는 것은 대기의 상층이 한랭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지상의 기온도 낮아질 것이라는 징조였습니다. 게다가 가루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루눈도 한랭한 공기에서 만들어지는 눈이었으니, 앞으로의 기온은 낮아질 기세를 충분히갖춘 셈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한 문제가 있다면 25에서 30cm정도인 적설량이었습니다. 운동화에 엉겨 붙는 눈과 신발 안쪽으로 밀려들어오는눈은 갈 길이 먼 나에게 꽤나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걷다말고 두 발을 쿵쿵 구르며 운동화에 묻은눈을 털어냈습니다. 누군가가 멀리서 그 모습을보게 된다면 내리는 눈이 마냥 좋아 날뛰는 줄로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였습니

. 그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올라오는중 이었는데 내리는 눈을 맨얼굴로 맞으면서 양미간을 좁혀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소리쳤습니다.

 

지영이냐? 그 사람은 아빠였습니다. 버스 안에서 통화를 하게 된 건 아빠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양리에 간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는데, 아빠는 대뜸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무언가 다 알고 있는 듯한 어투였습니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라고 말해버렸던 것이지만 아빠가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왜 나오셨어요. 눈도 이렇게 오는데.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자전거를 들어 방향을 되돌렸습니다. 아빠의 왼쪽 무릎과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자전거 왼쪽 손잡이 끝부분에는 눈과 흙이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눈길에 넘어진 것 같았습니다. 나는 흙눈을 털어주며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습니다. 아빠는 대답 대신 자전거뒷자리에서 우산을 빼내 나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빠 옆으로 겅중겅중뛰어가 아빠와 함께 우산을 썼습니다. 아빠가 나를 슬쩍 쳐다봤습니다.

 

어디, 얼굴이나 좀 보자.

나는 그제야 내가 머플러를 눈 밑까지 끌어올리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모자를 벗고 목도리를턱 아래로 끌어내리자 내 입에서 입김이 뿜어졌습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빠의 입에서도 허연입김이 새어나왔습니다. 아빠의 눈에서는 내 얼굴이, 내 눈에서는 아빠의 얼굴이 잠깐 동안 뿌옇게사라졌다가 되살아났습니다. 나는 살며시 웃어보였습니다.

 

그래, 됐다. 가자.

아빠는 다시 눈발 속으로 나아갔습니다. 나는아빠가 내 얼굴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얼 만족하였기에 모든 감상을‘됐다’한 단어로 결집시키게 되었는지 그 속뜻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백양리 전체가‘눈’이라는 짧은 명사 하나로 대체된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화법이 생소하지않았던 것은 언젠가 한 남자에게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남자가 시민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풀코스를 완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끝내는 결승점에 들어선 그가 바닥에 누운 채 헉헉대며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내손이었습니다. 약간의 경련이 일고 있는 그의 왼손이 내 오른손을 잡아끌어 그의 가슴에 가져다댔습니다. 심장이 몸 밖으로 뛰쳐나올 듯 박동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몇 분인지 모를 시간이 지난 후에 천천히 눈을 뜬 그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나는 비탈길을 내려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멍히 서있었습니다. 아빠가 저만치 내려가다가 왜 그렇게 서있냐는 얼굴로 뒤돌아봤을 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어기적거리며 내려갔습니다. 내리던 눈들은 불평 하나 없이 몸과 몸을 포개었습니다. 아빠는 쌓인 눈처럼 조용했고, 아빠를 따라 나 역시도 침묵했습니다. 길은 점점 더 많은 눈을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길은 언제쯤 포장공사를 하냐는 물음을 꺼내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지역구 의원이 예산안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지못하는 한, 이 백양리 길은 겨울만 되면 눈으로 자신을 지우고 말리라는 판단에 이르러 나는 더욱더입을 다물었습니다. 중량감을 더해가는 설경 속에서 길과 길이 아닌 곳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아빠의 발자국소리와 내 발자국소리의 차이 또한 미미해져갔습니다. 그 몰경계의 순간이 아빠와 나의구분마저 희미하게 만들어갈 때 나는 아빠의 옆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빠는 자전거앞바퀴를 보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아빠와 나는 영영 그 침묵에 흡수돼버릴 것 같았습니다.

 

 

아빠. 그날 방송, 보셨어요? 아빠는 열 발자국 정도를 걷고 나서 대답했습니다. 지영아, 이제 시집가자.여태껏 일관하던 침묵이 아빠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징표였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 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아빠와 내 마음의 비등비등하던 균형을 일순간에 무너트렸고 종국에는 아빠도 어쩔 수 없다고 실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허나 그런 말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어서나는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 올해 겨우 서른 살 됐어요. 그리고 시집가면 아빠가 듣고 싶어 하는 아빠란 말도 못 들을 거예요. 아버지라고 부를 거니까요. 아빠는 살며시 웃어주고 다시 침묵했습니다. 대신, 아빠의 팔꿈치에 눌린 자전거경적이 삐빅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나는 손에서 우산손잡이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우산이 옆으로 젖혀지더니 내리던 눈이 얼굴정면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뛰면 닿을 듯한 공중의 어느지점에서 급조된 눈이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구름에서 눈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흡사 허공에 거주하는 유령들이 눈가루를 집어던지는 듯했습니다. 하늘의 색과 눈의 색이 유사해서 근접하기 전까지는 눈의 형태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늘과 눈의 무분별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눈은 왜 이렇게 사정없이 떨어지는지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1년 만에 백양리를 찾았으니 집 앞 감나무에 올라앉은 까치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빠가 까치 때문에 땅콩농사 망쳤다는 말을 하기전까지는 말입니다. 개체수가 급증한 까치는 더이상 길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엄마는 나를 환영하진 않았습니다. 엄마와 아빠를비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내게무슨 일이 있었고 뭣 때문에 갑자기 왔냐고 물었을 때는, 아빠는 묻지 않았는데 엄마는 왜 그러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엄마도 입이 무거운 편이었지만 그렇게 말수가 많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휴가를 얻었을 뿐이라고 대답해주고 말았는데, 무언가를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에게는 더 깊이 감추려는 것이 내 본능 같았습니다. 엽총을 꺼내든 아빠를 따라 나가지 않았다면 또 어떤 본능을 발견하게 됐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게서 나를 구출한 아빠가 그만 들어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빠의 사냥실력이 얼마나좋아졌는지 봐야겠다는 핑계를 대며 뒤따랐습니다. 눈이 그치자 흐리멍덩하기만 하던 하늘에 군데군데 구름이 뭉쳐있었고 눈을 치우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그래도 백양리의 70여 가구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양이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아빠와 나는 또다시 그 눈을 밟고 서있었습니다.

 

제 좀 눈이 그치려나보다.

아빠는 뒤뜰을 지나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사흘은 더 눈이 내릴 거라고 교정해주었습니다. 대나무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기 구름이 빨리 움직이는 걸 보면 알수 있는데 눈이 또 올 조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빠는 나를 쳐다보며 기특하다는 듯이 미소 지었습니다. 아빠, 제가 기상캐스터 되고 나서 하게 된 일이

뭔지 아세요? 하늘 보는 거예요. 예전엔 땅만 보고 살았는데 이젠 하늘을 더 많이 보고 살아요. 가끔 기상캐스터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이렇게 대답하죠. 하늘을올려다볼 줄 알면 되지요.

 

대숲에 쌓인 눈은 푹신푹신했습니다. 눈 아래 깔려있는 마른댓잎들이 쿠션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탄력 있는 눈을 재미나게 밟아대자 아빠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낫으로 쳐올려 베어버린 대나무의 뿌리 쪽은 죽창처럼 뾰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나 두껍게 쌓인 눈을 걷어내면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죽창들이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조금 겁을 먹은 나는 대나무를 붙잡으며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흔들린 대나무의 잎과 가지에서 요술 빛가루처럼 눈이 떨어졌고 그 황홀한 광경에 동요되어 가슴이 다시금 들뜨긴 했지만 말입니다.

 

대숲을 벗어나자 눈이 새하얗게 덮인 땅콩 밭이 나타났습니다. 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다 뒤돌아보니 아빠와 내 발자국만 나란히 찍혀있었습니다. 아빠, 신랑신부 입장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너도 이제 시집을 가면…… 또 그 말씀이세요? 아빠는 저를 잘 아는 것 같다가도 가끔은 아침뉴스 편집부장보다도 모르시나봐요. 편집부장이 누구냐? 저희 보도국에 새로 부임한 편집부장이 있어요. 이 사람이 아침뉴스 편집을 맡자마자 일기예보 시간이 단축돼버렸어요. 90초에서 60초로요.

 

아침뉴스 두 시간 동안 일기예보를 네 차례 방송하잖아요. 편집부장 얘기는, 여러 번 하는데 길게할 필요가 있냐는 거예요. 60초면 중심지역만 언급해야하고 일기도나 구름사진도 5초 이상은 보여줄 수가 없거든요. 저야 물론 짧으면 편하죠. 하지만 아빠도 생각해보세요. 그 바쁜 아침에 네 차례의 일기예보를 다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넷 중 하나를 본단 말예요. 그러니 각각의 예보가 모두 알차게 채워져야 한다고요. 여러 번 방송하니까 시간을 줄이고 함량미달인 예보를 내보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어쩐지 니 얼굴 좀 볼라치면 금방 들어가 버리더라. 일단, 딸 시집보내기에 집중된 아빠의 관심을흩뜨리는 데는 성공한 듯했습니다. 나는 아빠가 딸자식 결혼 걱정을 잊도록 다른 이야기를 이어붙였습니다. 아빠. 예전에 제가 독도 날씨는 뭐 하러 소개 하냐는 항의전화 얘기해드렸죠? 다른 얘기도 해드릴게요. 요즘엔 별의별 전화, 이메일이 다 온다니까요. 방송할 때 일기도화면에서 울릉도 좀 가리지 말라는 건 애교 축에 속하고요. 일기보도가 아니라 분명히 일기예보인데도 오보를 냈다고 항의한다든지 일기예보가 아니라 일기후보냐면서 막무가내로 육두문자 쓰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후배는 태풍이 일본으로 빠져나가 다행입니다 라고말했다가 일본대사관한테서 항의전화를 받았다니까요.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 그리고 파도가 높다고 해서 배를 안 띠웠는데 파도가 높기는 커녕 고기 잡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고 손해배상하라는 어민도 있었고요. 또 이런 전화도 있었어요. 태풍이 돌아간다더니 이게 뭐여. 농사 다 망쳤응께 물어내. 은행 계좌번호 부를텡께 받아 적어.

 

허허, 그래서 어쨌냐? 어쩌긴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열 번쯤은 한것 같아요. 제가 그 사람들을 이해 못하면 안 되잖아요. 얼마나 속상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요. 아빠가 농부니까 그 마음을 잘 알죠. 밭에서 나와 야산에 다다르자 까치들의 깟깟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가 주위를 경계하며 엽총에 총알을 장전했습니다.

 

근데 뭘 잡으시려는 거예요? 까치.

정말 까치를 잡아요? 나는 딸이 고향에 온 날 까치를 잡는 건 너무 한거 아니냐고 불평했지만 아빠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발소리를 낮출 뿐이었습니다. 야산과 밭사이에는 허리높이의 둔덕이 있었습니다. 둔덕에 몸을 기댄 아빠가 소나무 한 그루를 향해 엽총을 겨눴습니다. 목표지점을 살펴보니 날개 안쪽에 고개를 파묻은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있었습니다. 나는 멀리 떨어져서 두 귀를 막고 아빠와 까치를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아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입술만은 더 굳게 다물어져서 불그스름한 돌조각 같았습니다. 그 순간, 야산 반대편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목표물이었던 까치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어디론가 금세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빠는 별달리 놀라는 기색도 없이 엽총을 거뒀습니다. 무슨 일이래요?

백양리에서 까치 피해 안 입은 사람이 없어. 농사철 돌아오기 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는 거다. 백양리에서 엽총 가진 사람은 나하고 상완이아저씨뿐이니, 누군지 안 봐도 알겠다. 저리로 가자. 아빠는 야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돌아 인삼밭쪽으로 갔습니다. 그때 두 번의 총성이 연달아 울렸습니다. 아빠는 주춤하고 야산 쪽을 쳐다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 두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총성의 메아리가 겨울하늘 속으로 잦아들고 더 이상의 소리가 이어지지 않자 아빠는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인삼밭 옆은 대여섯 기의 무덤이 모여 있는 묘지였습니다. 경사진 자리인데다가 잔디밭이었기때문에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빠, 저 여기서 눈썰매 탄 적 많아요. 모르셨죠? 그럼 이 양반이 네 이름 지어주신 건 아냐?

눈에 덮여 무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운불룩한 땅 한군데를 아빠가 가리켰습니다. 내가 이 어르신한테 부탁했었다. 그러고 보니 너한테 얘기해준 적이 없었구나. 너 태어나고 3년

후엔가 돌아가셨을 거다. 절이나 한번 올리고 가라.

 

나는 눈밭에서 큰절을 했습니다. 두 손을 눈 위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르신, 이제야 찾아뵙네요. 지영이란 이름은 잘 쓰고 있습니다. 내 이름이 그토록 새롭게 느껴진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런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지영씨? 정말 흔한 이름이군요. 이름처럼 흔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임경수씨. 그쪽은 흔한 이름도 아니면서 왜 그런 흔해빠진 수작을 부리죠?

마라톤 완주 후에‘됐습니다’라고 말했던 그남자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가 그랬습니

. 내가 그 생각에 잠겨 멍해있을 때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방아쇠가 당겨진듯했습니다. 총소리 때문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기전까지 나는 눈 위에 엎드리고 있었습니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아빠였고, 언덕마루에 홀로 서있는 것은 몸통이 심하게 휜 소나무였습니다. 소나무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도망치듯 날아올랐고 또 다른 검은 물체는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추락한 물체는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다가 언덕 중간에 멈춰 섰습니다. 날아오른 물체는 언덕 저쪽으로모습을 감춰버렸습니다.

 

검은 물체는 까치였습니다. 아빠의 등 뒤에서 넘어다본 까치는 머리가 없었습니다. 총알을 따라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는 윽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지만 나도 모르게 까치를 힐끔거리고 있었습니다. 들고 있던 유리잔을 놓친 손처럼 까치의 목은 허전했습니다. 개방된 목에서 붉은 피가 새어나와 흰 눈과 흰 깃털 위에 점점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날개가 발작적으로 파닥였고 가느다란 두 다리는 바르르 떨렸습니다.

 

아빠는 까치의 두 다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까치의 목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제자리에서 앞뒤로 몇 번 흔든 까치를 아빠는 언덕 아래 덤불로 내던졌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 까치는 몇 방울의 피를 눈 위에 튀기며 허연 수풀 속에 처박혔습니다. 나는 까치가 마지막으로 비행하고 간 경로를 눈으로 훑어가다가 저멀리 북서쪽에서 밀려오는 구름떼를 발견했습니다. 한두 시간 후면 또다시 눈이 퍼부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꿈과 총소리는 별개였을지도 모릅니다. 꿈속에서 들은 총소리의 서늘함은 기억됐지만 꿈이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총소리는 실제로 어디선가 들려왔고 그것을 꿈결에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총소리는 자꾸만 꿈속으로 들어가 꿈의 음향효과가 되려고 했습니다. 반수면 상태로 간밤의 꿈과 총소리를 분석하다가, 나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달되는 두런두런 소리는 머릿속을 어수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총소리를 꿈의 소유로 넘겨주고 둘의 분리를 포기해버렸습니다.

 

마에게 어제오늘 아침뉴스 일기예보에 내가 왜 나오지 않았냐고 묻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을 엿듣고 나서야나는 이마까지 덮어쓴 이불을 눈 밑으로 끌어내렸습니다.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보도국에서 홍차를 마시며 기상청홈페이지에 접속해있을 시각이었습니다. 아침뉴스 일기예보는 다른 기상캐스터가 대신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일기예보를전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어제 많이 추우셨죠? 서울이 영하 8.8도까지떨어지면서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였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춥겠는데요. 서울이 영하 9도, 철원이 영하 17도, 백양리는 영하11도까지 떨어지면서 정말 코끝이 찡할 만큼의 강추위가 예상됩니다. 이번 추위는 모레까지 계속되겠습니다. 구름 모습입니다……

 

나는 마당으로 나와 눈을 밟고 서서 오늘아침일기예보에 나왔을 법한 멘트를 만들어내 중얼거려보았습니다. 하늘은 온통 회색구름으로 뒤덮여있었습니다. ……현재 북서기류가 강하게 들어오면서 호남서해안이나 춘천, 울릉도, 백양리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백양리는 모레까지도 2에서 최고 10센티미터의 눈이 더 내리겠습니다. 눈이 간간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적설량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밤사이 내린눈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종아리까지 차오른 눈높이는 언제쯤 낮아질지 예측이 불가능했습니다. 확실한 건 모레까지 눈이 내릴 것이고 기상캐스터는날씨를 전달하기가 더욱 곤란해지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같은 날씨가 반복되면 일기를 예보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매일매일 새로운표현을 사용해야 하는데, 오늘도 눈이 많이 오겠습니다라는 말밖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뒤뜰은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스사삭스사삭 소리로 풍성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움직이는댓잎에서 눈가루가 쏟아졌습니다. 눈의 흰색과 대나무의 초록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절경은 나를유혹하려고 특수제작된 것만 같았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도록 빛나는 광경이었습니다. 눈이 펄펄 내리던 설악산도 그러했습니다. 임경수씨에게 설악산에 가자고 제안한 건 나였고, 당일 피곤하다는 이유로 다음에 가자고 게으름을 피운 것도 나였습니다. 그래도 아이젠과 장갑을 사들고 현관밖에 서있던 그를 그냥 되돌려 보낼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겨울 설악산은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산에 도착하자 동화속의 장면이 아니고서야 그런 풍경이 펼쳐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진갈색의 나뭇가지와 조화된 백색의 눈은 아무도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위엄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눈길에서 조심조심 움직이는 등산객들의 뒷모습이 그걸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산 속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함으로 숨 막힐 듯했습니다. 눈이 방음기능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가져간 소음들이 눈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저희들끼리 부딪히고 싸우느라 저토록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세 개쯤은 아니다행이라고 답변해주었고, 산봉우리 중턱의 눈이더 눈부신 건 그와 나의 웃음소리가 스며들었기때문이라고 덧붙여주었습니다.

 

봉우리 정상에서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따끈한 음료가 몇 배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와 나는 생면부지의 등산객들과 커다란 바위그늘에 모여앉아 오랜 동료처럼 날씨와 설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겪을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경수씨, 제가 웃긴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기상캐스터들이 모여 운동회를 열었대요. 그런데 그날 비가 왔대요. 그에게 우스갯소리를 한 이유는 달리 고마움의 표시가 떠오르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얘긴 어딘지 모르게 슬프네요. 지영씨, 제가 웃긴 얘기를 해볼게요. 예전에 제가 마라톤 결승점에서 했던 말 기억납니까? 됐습니다라고. 사실은‘지영씨를 생각하며 달렸습니다’뭐 이런, 좀멋진 말을 하려고 했었어요. 근데 너무 힘들어서 말이 헛 나왔지 뭡니까.

그래도‘죽을 뻔 했어요’보다는 점잖던걸요.

그는 기꺼이 반응해주었습니다. 눈꽃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그의 웃음을 보면서, 나는 만난 지 열 달이 넘어가는 남자에겐 대략 어떤 감정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만났던 몇몇 남자들에 관한 기억 위에 그의 모습이 덧씌워졌습니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이라는 표현으로 갱신되는 일기현상처럼 말입니다. 그는 적당히 유쾌하고 적절히 분노하고 알맞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전하는 일기예보도 거의 빼놓지 않고 모니터하는 듯했습니다.

 

휴대폰으로 이런 문자메시지가 수신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영씨, 오늘 예보 중에 말한 장마비는 장맛비가 바른 발음이래요.’‘장맛비라고 하면 비에서 장맛이 날 거 같아요. 전 그냥 장마비로 할래요.’라고 답장했지만 그는 내 발음까지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대숲의 소리는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어느새 나는 한 발 한 발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대숲을 바라보고만 있다가는 정신이 아찔하여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사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숲 밖에서 바라다 본 대나무와 숲 안에서 들여다본 대나무는 확연히달랐습니다. 대나무는 그냥 서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무게를 견디며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숲 밖에서 본 찬연함은 감소되고 생물로서의 끈질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눈의 무게에 눌려 허리가 부러진 대나무들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길을 막아섰습니다. 만일 길눈이 어두웠다면 발목까지 푹푹빠지는 그 눈길을 지나 얼기설기 얽힌 대나무들의 숲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숲을 빠져나가면서 상처를 얻어간 흔적이 보였습니다. 대나무를 잘라내면 생기는 죽창이 눈밭에 드러나 있었고 거기서 붉은 피가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뾰족한 부위에 묻은 피는 얼어붙어있었습니다. 주변에도 핏방울이 떨어져있었고 곱게 쌓여있어야 할 눈이 파헤쳐졌거나 흩어져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자리에 넘어지면서 죽창에 찔린 자취였습니다.

 

대나무가 우산역할을 했는지 핏자국들이 눈에 완전히 덮이지 않아서 나는 땅콩 밭쪽으로 향한 핏방울을 따라갈 수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숲 바깥으로 나가자 핏방울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습니다. 깊이 파인 발자국만이 마지막 증거였습니다. 발자국 모양대로 눈이 쌓여서 계속 따라간다면 당사자를 찾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발자국은 땅콩 밭을 지나 인삼밭 근처 묘지로 향해있었는데, 나는 까치가 곤두박질친소나무에서 발자국 미행을 그만두었습니다. 운이나빴던 어떤 사람의 발자국에는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지기도 했거니와 언덕에서 바라본 저 멀리 계단식 밭과 설산과 낮은 고개들이 하얀 눈을 품고 서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설악을 하산하면서 그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경수씨. 전 예전에 이런 팬레터를 받은 적이 있어요. 중년 남자가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였죠. 그남자 얘긴 이랬어요. 회사가 부도나고 빚에 쫓겨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대요. 근데 그때 텔레비전에서 제가 아주 밝은 목소리로 내일 하늘은 오늘보다 더 푸를 것 같습니다, 어쩌고저쩌고 말하더래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아,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번뜩 들더래요. 그래서 마음을 바꿔 자수를 하고 구치소에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는 지금도 제가 힘들 때마다 꺼내서 읽어보곤 하죠. 그 편지를 경수씨한테도 보여주고 싶네요. 사실 맨 마지막 말은 그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먼저 편지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기때문입니다.

 

그때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이 눈에 덮인 알록달록한 산하였습니다. 엄마도 총소리를 들었다는 걸 알게 되자 나는꿈에게서 총소리를 빼앗아올 수 있었습니다. 총소리는 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밤에 들었던 총소리는 현실에서 발생한 소리였습니다. 저녁식사 중에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 가설을 확실히 입증해주고 있었습니다. 상완이 아저씨가 총에 맞아 입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밭 옆에 읍내로 가는 지름길 있잖아. 거기서 어떤 놈이 사냥을 하다가 잘못 쐈는지 상완이양반 여기 등 쪽 어깨를 맞혀버렸어. 새벽이니 캄캄해서 뭐가 보였겠어. 시커먼 것이 대밭으로 도망치긴 하는데 총알이 어깨에 박혔으니 쫓아갈 수가있나. 어떤 놈인지 참, 그 새벽에 뭐가 보인다고 사냥을……

 

밥상에서 저만큼 떨어진 TV에서는 일기예보가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태풍이 일본으로 빠져나가 다행이라는 말실수를 했었지만 이젠 꽤 원숙해진 후배의 기상예보였습니다. 백양리 지역의 날씨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구름사진을 보고 변함없이 모레까지 눈이 내리겠다고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빠의 표현을 빌려 그‘어떤 놈’의 발자국도 눈에 덮이게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대밭으로 도망간 게 확실하다면 상완이 아저씨를 맞힌 사람이 그 혈흔의 임자일 거라고 직감했지만, 나는 낮에 목격한 현장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그저아빠만 총소리를 못 들은 것이 수상하다고 웃으며 농담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밤새 내릴 눈이 발자국을 없애지만 않으 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습니다. 발자국 미행에 또 다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었습니다. 별 걸 다 관심 갖는다고 스스로를 견제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탐정처럼 범인을 밝혀낼 수도 있지 않겠냐며 나를 부추겼습니다. 내가 나를 꾸며대며 감싸고돌자 금방 잠이 찾아왔습니다.

 

잠은 나를 끌어안고 아침 7시 20분으로 날아가 안착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습니다. 눈구름은안 보였지만 밤사이 눈이 오긴 온 모양이었습니다. 눈을 치워놓은 고추장독 뚜껑에 2, 3cm 정도의 눈이 다시 쌓여있었습니다. 다행히 범인의 발자국을 완전히 지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현장의 피는 가까이서 관찰해야 알아볼 만큼 희미해져있었지만 움푹 파인 발자국은 그런대로 증거물의 임무를 수행할 만했습니다. 나는 어제 찍은 내 발자국을 밟아가며 허리가 휜 소나무까지 무난히 미행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이어질 발자국에 다른 이의 발자취가 섞이기라도 했다면 헛수고가 될 게 뻔해서 잠깐 머무적거리긴 했지만, 날씨가 날씨인 만큼 동네사람이 나다닐 확률이 적었습니다. 인적이 뜸한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찾아낸 다른 이의 발자국이라면 까치발자국 외에는 아예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발자국의 뒤를 밟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던 발자국이 무덤 앞에까지는 사라져있었습니다. 아빠와 내 발자국들에 겹쳐져 분간이 되지 않은 듯했습니다. 그 후의 발자국들은 신기할 만큼 친절했습니다. 하얀 길 위에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그려놓았고 아무도 접근하지않은 새 공책 같은 길만을 골라서 갔습니다. 총부리를 눈 위에 끌며 갔는지 옴폭 팬 줄까지 발자국과 동행시켜놓은 상태였습니다. 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한번 시작한 미행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범인의 발자국과 내 발자국이 사이좋게 아주 먼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발자국은 점점 낯선 곳을 향했습니다.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조금 추웠고 지쳐갔습니다. 잿빛구름은 쟤 뭐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먼땅은 눈을 덮고서 세월 좋게 늘어져있었습니다.

 

나는 길을 잃은 것 마냥 멈춰 서서 겨울이 만든 기상현상들을 훑어보았습니다. 폭설, 적설량, 강추위, 대설경보 따위의 말들이 나를 스쳐지나갔지만결국은 거대한 눈밭 위에 나만 혼자 남아있었습니다. 내 몸은 점차 축소되는데 눈의 땅만 점차 확대되는 느낌이 들자 다리의 힘이 쭉 빠지면서 현기증이 왔습니다. 풀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눈을감았습니다. 어지럼증이 가시길 기다리는 동안 한없이 긴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대관령에서는 무섭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도 말입니다.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대관령은 차량의 지정체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설악산에서 서울로 가려면 한계령을 넘는 게 수월했지만 나는 임경수씨에게 대관령을 청했습니다. 일기예보에서 대관령의적설량을 소개할 때마다 눈 쌓인 대관령을 한 번쯤 지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기상캐스터께서 날씨에 딱 맞는 길을 안내해주셨네요. 임경수씨가 핸드브레이크를 걸고 만약을 대비해 히터를 잠시 끄며 빈정대듯 말했습니다. 하늘의 기밀을 퍼뜨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아세요? 천기를 함부로 누설하면 죄받아요. 무안했지만 지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처럼 내가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오후에 비 오니까 우산 꼭 챙기라고 문자메시지 보내줍니까? 정체된 눈길 한복판이었고 썰렁한 차안에 갇혔는데도 나는 키득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쁠 때가 언젠 줄 아세요? 화창한 오후인데도 저녁에 비가 올 거라는 예보 때문에 사람들 손에 우산이 들려있을 때예요. 나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이 재생되는 CD플레이어를 멈추고 라디오의 교통정보 주파수를 찾으며 말했습니다. 슬플 때는요? 그가 내 손동작을 저지하여 라디오를 끄더니다시 마스카니의 곡을 틀며 물었습니다. 슬플 때요? 글쎄요…… 맞다, 재작년 여름 집중호우 때였어요. 제가 특별재해 방송을 맡았었죠. 열심히 날씨를 전하고 있는데 기상캐스터 교체 명령이 내려왔어요. 시청자의 항의가 들어온거죠. 그런 국가적인 재난 시기에 여자가 얼굴을 내미느냐는 거였어요. 하는 수 없었죠.

 

그때 화장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 따위 말을 방송국에서 받아들였답니까?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태풍 불 때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봐야 정신을 차립니다. 간판만 부서지지 않겠어요? 내 말에 한참을 키득거리던 그는 내가 창밖의 설경을 내다보며‘겨울에는 대관령젖소한테서 초코우유가 나온다면서요? 눈하고 혼동되지 않게요’라고 우스갯말하자 앙천대소를 했습니다. 그말이 웃기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서야 나도 따라 웃었습니다. 휴, 저도 이제 서른이에요. 웃음 끝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자, 그가 의문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봤습니다.작년 마지막 날이었는데요. 일기예보 중에‘이제 몇 시간 후면 올해의 마지막 해가 저뭅니다’라는 멘트를 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제가 어릴 때 TV에서 사망자 명단 같은 걸 보면요. 사망자의 나이가 30이 넘으면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저 사람은 덜 억울하겠다’라고 말이죠. 그땐 30 이상의 나이는 살 만큼 산 나이로 여겨졌던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무지하게 끔찍하지만……

 

저는 31년이나 살았고 지영씨하고 대관령까지왔는데 왜 이렇게 억울할까요? 그가 차 앞 유리에 대고 허연 입김을 불어보이고는 온몸을 으슬으슬 떠는 시늉과 함께 코와 양미간을 장난스럽게 찡긋거리며 히터를 재 작동시켰습니다. 자동차는 대관령 어디쯤에 그대로 놓여있었습니다. 눈은 끊임없이 내려 그와 내가 탄 차를 덮어버릴 태세였습니다. 나는 재차 걷고 있었습니다. 걷기가 힘에 부쳐쉬고 싶어졌을 때 야산에 가려진 양옥집이 나타났습니다. 양옥집에는 사육장이 딸려있었습니다.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배어있는 사육장에서 개와돼지들이 해석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백양리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하고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백양리를 이탈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습니다. 발자국은 사육장 뒷문 앞에서 생명을 다하고 종적을 감춰버렸습니다.

 

 

사육장으로 선뜻 다가갈 수는 없었습니다. 민감한 개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냄새 맡기라도 한다면 떼를 이뤄 짖어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내 염탐이 들통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집터를 울타리처럼 둘러싼 정원수들 사이에 서서 양옥집과 사육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설령 개 때문이 아니라 해도 내가 거기서 딱히 취할 행동은 없었기 때문에 범인이 어떻게 사는지 구경이나 하고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습니다. 마당한구석에는 조그만 연못이 놓여있었고 그 둘레가 관상석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간이주차장에 주차된 고급승용차가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도 산울타리로 쓰인 측백나무와 열매가 매력적인 호랑가시나무가 내 귀가를 지연시켰습니다. 흰 눈을 덮어쓴 측백나무에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얹자 그 자체로 성탄목이 된 것이었습니다. 호랑가시나무가지에 달린 붉은 열매가 빨간 꼬마전구처럼 돋보였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빨간 네온전구를 손가락으로 꼭 쥐며 누군가의 질문에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임경수씨의 여동생을 만난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어떤 점이 좋으셨어요? 잘생겼잖아요. 좌중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내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쥐고 있던 네온전구에서 발한 불빛이 엄지와 검지를 투과하자 손가락 끝이 반투명으로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임경수씨는 좌중을 향해 손바닥을 천장으로 향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빙그레 웃어보였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를 과하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사육장 뒷문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피부가 흰 편이었고 금테안경을 쓴 마른 체구의 남자였습니다. 내용물이 가득 찬 노란플라스틱 양동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전나무 뒤에 숨어서 두엄자리에 오물을 버리는 남자를 가까이서 살피다가 남자의 목에 붙어있는 반창고를 보았습니다. 남자가너덜해진 반창고를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와중에 목 왼쪽부분의 살갗이 드러났습니다. 쇄골까지 길게 그어져있는 붉은 상처가 유달리 확대되어 보였습니다.

그날 뭔 일이 있어서 그랬는진 모르겠다마는, 니 얼굴이 어쩜 그렇게 나를 닮았던지…… 쟤가나 닮지 말아야하는데, 나 닮으면 안 되는데, 속으로 그랬다. 아버지가 너를 시집보내자고 하는데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딴 부모처럼 시집 안 간딸 있다고 남부끄럽지도 않고. 너는 너 할 일 하면서 혼자살고 싶으면 혼자 재미나게 살아라. 하는일 안 된다고 대뜸 시집이나 가버리지 말고…… 엄마, 크로마키가 뭔 줄 알아요? 일기예보 할때 제 뒤에 있는 그림하고 사진들 봤죠? 제가 거기에 손 갖다 대고 기온이 어쩌고 강수량이 어쩌고 하잖아요. 사실은 제 뒤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파랑색 벽뿐이에요. 엄만 몰랐죠? 제 앞에 다른 화면이 있거든요. 제가 그 화면을 보고 손 위치를 맞추면요, 컴퓨터가 사진하고 저를 합쳐놓는 거예요. 그러니 저는 아무것도 없는 벽에 대고 떠드는 꼴이죠. 그걸 전문용어로 크로마키라고 해요.

 

코로 막힌지, 귀로 막힌지는 모르겠고, 엄마는 일기예보 끝날 때 지영이가‘날씨였습니다’하고 인사하는 게 제일 이쁘더라. 하지만 그날 일기예보에서는‘날씨였습니다’라는 말이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블루 스크린 앞에 서서 일기예보 멘트를 연습할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멘트를 내가 직접 작성했는데도 말입니다. 연출자의 큐 사인이 내려지고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아침 6시 25분의 일기예보 생방송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은 눈피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셔야겠습니다. 밤사이 많은 눈이 내려 현재 강원 대부분 지방과 대전 산간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발효 중입니다. 특히 대관령……

 

그 부분에서 나는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격한 정서에 빠져 멘트를 급작스럽게 끊고 말았습니다. 오른 손등을 입술에 갖다 대며 침을 삼키고 호흡을 가다듬자 이어폰으로‘지영씨 왜 이래!’라는 담당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방송 사고였으므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다음 멘트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대관령에는 30센티미터의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슈퍼컴으로 분석한 눈구름의 모습입니다. 지금 서울경기와 일부 섬 지방에도 눈이 내리고 있는데요, 이 눈은 오늘 오후가 되면 전국적으로 영향을 주겠습니다. 내일까지 예상되는 적설량입니다.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나는 강원도 지역의 지도를 보다가‘강원도 산간지방’이라는 멘트를 울먹이는 목소리로 발음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강원도의 지도가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텅 빈 블루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 앞 모니터에 있는지도 상의 강원도와 매치될 부분을 블루 스크린에서 감으로 찾아내 오른손으로 짚었습니다. 그러자‘아, 여기쯤에 설악산과 대관령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쳤던 것입니다. 나는 오른손을 그대로 고정시킨채 리모컨을 쥔 왼손으로 울음소리가 빠져나오는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이어폰에서는‘지영씨, 지영씨, 말해! 김지영!’이라는 말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담당자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고나 역시도 그 사고를 속히 수습하고 내 멘트를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울음을 참고 멘트를 이어가려해도‘강원……’, ‘강원……’까지만 발음될 뿐 그 다음 낱말은 울음에 섞여서 도저히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내가‘강원……’이라는말만 네 번쯤 반복했을 때 텔레비전으로는 광고가내보내졌고, 나는 끝끝내 강원도를 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전해들은 말로는 카메라가 꺼지고 스탭들이 달려왔을 때도 나는 똑같은 자세로‘강원……’이라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곰곰이 따져 봐도 내 일을 망쳐가면서까지 그런 식으로 감정에 점령당할 일은아니었습니다. 설악산에서 돌아온 후에 임경수씨가 넌지시 내게 결혼을 고백했지만 난아직 할 일이 많아 그럴 생각이 없다며 거절했고그는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연락이 잠시 끊어진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결혼이 불가하다고 말한 건 정말로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가 조금은 옹졸한 남자로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였는지 도통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백양리에 와서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고 그 결과를 아빠에게 보고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내가 영 희한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눈이 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았지만 귀가 길에 본 하늘은 내일까지 최소한 10cm의 눈이 더 내리리라고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입수한정보를 아빠에게 공개해서 내일이라도 범인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자국이 눈에 덮여증거가 소멸되기 전에 말입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망갔습니다. 잠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잠의 발자국만 끝없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잠이 무엇 때문에 어딜 그렇게 떠나갔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잠을 잡으려다 지쳐 쓰러졌을 때가 언제였는지도 몰랐습니다.

 

커튼 없는 창문이 내 얼굴에 햇빛을 들이댔습니다. 처음엔 태양이 강하게 비치는 꿈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태양과 싸웠습니다. 꿈이면 어서 물러나라고 말입니다. 태양은 물러나지 않고 더 강한 햇빛을 들이부었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번쩍눈을 떴습니다. 시각은 11시 40분이었습니다. 반투명창에는 하얀빛이 훤하게 번져있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밖을 살폈습니다. 태양이 보였습니다. 우중충하던 하늘은 한결 투명해졌고 햇빛은 정신없이 눈을 녹여대고 있었습니다. 내 예상적설량까지도 완벽히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마을과 산은 자신들의 색깔을 찾아가기 바빴습니다. 햇빛이 접근하지 못한 대숲의 발자국은 그런대로 온전했지만, 대숲 바깥으로 나가자 발자국은 냉수로 액화되어 밭고랑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보존된 발자국이 있었지만 그것은 내목적에 조금도 부합되지 않았습니다. 묘지에도 발자국은 없었습니다. 흙탕물에 찍히는 내 발자국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없는 썩은 까치와 노송의 나뭇가지가 널브러진 야윈 무덤들이 전부였습니다.

 

나는 언덕에 서서 저 멀리에 걸려있는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색깔로 보건대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떠오고 있었습니다. 바람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이 내린다는 표시였지만 기온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비가 되어 내릴 게 틀림없었습니다. 나는 저 구름이 당도하기 전에 백양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새 우산 하나를 준비하는 게 좋으리라고 다짐한 건 언젠가임경수씨에게 한 말이 떠오른 까닭이었습니다. 우산살이 튼실한 걸로 준비하세요. 전선을 동반한 저기압이 지나갈 땐 좀 고약하거든요.

 

돌풍, 천둥번개, 우박,…… 나쁜 건 골고루 다 갖췄죠. 오늘 다가오는 녀석이 요 전선이란 걸 갖고 있어요. 마치‘조커’를 갖고‘원카드’를 외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죠.

 

“책 한권 더 읽고, 글 한줄 더쓰겠다”

당선소감

 

<크로마키>는 2004년 04월 중순경에 써놓은 글이었다. 소설을 응모한 것은 12월이었으니 대략 7개월 간 방치된 글이 공개된 셈이다. 바로 이점이 독자들에게 가장 죄송하다. 가능한 최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이 글쓴이의 예의인데 그런 부분에서 충실하지 못한 게 아쉽다. 지난 7개월의 기간을 다소 껄끄럽게 인식한 이유는, <크로마키> 이후의 소설들이 염려되기 때문인 듯하다. 수상소식을 통보받았을 때 나는 소총사격장에서 병사들을 통제하던 중이었다. 사격장 내에 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안전수칙에 따라서만 움직이게 되어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발생되는 사고는 치명적이다. 그때 내게 당선의 기쁨은 당연히 컸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은 물론 두려움마저 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들고서 사로에 들어선 사수나 다름 없다는 느낌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200여미터 전방의표적을 명중시키느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옆 전우의 몸에 대고 실탄을격발하느냐……

 

나는 사격 직전의 요령대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책 한 권 더 읽고, 조금 더 생각하고, 글 한 줄 더 써야겠다. 그전에, 의도적으로 문안인사나 안부전화 한 번 드리지 않은 내‘싸가지 없음’에도 이따금 멀리서 내 안부를 물어봐주신 김명인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이젠 감히 인사드릴 수 있겠다.) 또한 부족한 글을 채택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들과 대전일보사에도 큰 감사를 전한다.

 

<약력>

1981년 09월 08일 출생

△전북 익산시 은기동 434-1

2000년 02월 원광고등학교 졸업

2004년 02월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10월 육군 학사장교 임관

2004년 현재 육군 포병장교(계급:소위) - 육군포병학교

 

 

“사랑연습 고백 진솔한 순정 묻어나”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1편의 작품을 통독하고 나니 그 질적 수준의 우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4편은 상당한 소설적 성취를 빚어내고 있다.

 

〈침〉(노순호)은 침술에 종사하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그리고 있다. 의붓아비에게 당한 성폭행, 가출, 위경련, 한 노인의 침 구완으로 구사일생 등등의 거대서사가 가리키는 대로 이 작품은‘이야기 조작 강박증’이 너무 심하다. 통속적인 이야기의 억지스런 짜맞추기는 단편소설의 경계를 벗어난 몰개성적 발상일 뿐이다.

 

〈더 키스〉(김정연)도 역시 침사(鍼士)의 일상을 다루고 있는데, 이야기들을 산만하게 끌어모아놓고 있어서‘생활세계’의 재현에 일정한 피상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어휘의 취사(取捨) 분별력이 산문의 관건이듯이 이야기의 정리력이야말로 소설의 골격임을 철두철미 깨달아야겠다.

 

〈그 사람 박봉찬〉(박성실)은 걸찍한 사투리의 말맛이 한껏 살아 있고, 남편의 시앗보기에 대응하는 오늘날 농촌 여성의 돌올한 정체성도 돋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나’의 관찰자 시점은 너무 방관적일 뿐만아니라 작품의 길이도 응모 규정의 두 배쯤으로 길다랗다는 흠이 두드러져 있다.

 

〈크로마키〉(진재남)는‘~습니다’투의 고백체 문장으로 일관하는 그형식 자체가 낡은 것으로, 말하자면 전시대적 양식이다. 그렇긴해도 일기예보를 매일같이 공중파로 날려보내는 한 기상 캐스터가 풀어가는 찬찬한‘사랑연습’의 고백에는 진솔한 순정이 묻어난다. 또한 사냥길에 나선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떠올리는 어떤‘고전적인 사랑’에는 오늘날의 부박한 섹스 일변도식 남녀교제에 대한 윤리적 저항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가 긴장감 좋게 실려 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거듭하여 문운을 펼쳐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