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 하얼빈에는 물개가 산다 (1) / 김춘규

시인 최주식 2010. 2. 5. 23:48

하얼빈에는 물개가 산다 (1) / 김춘규
 
"워메! 물개는 나가 풀어 주었는디. 물개가 또 있어 부렀네"
"아따! 더 늦기 전에 살 비비고 살잔께"
그는 또 숙희 생각에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아이고. 반장님, 그 물개를 혼자 먹을라요?"

그림 남학호
그림 남학호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일어난 물 갈래가 희뿌옇게 갈라지고 있다. 때문에 이랑들이 햇빛을 받아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인다. 찬란하게 출렁이는 바다를 뒤로하고 황견은 커다란 짐승을 어깨에 메고 걸어오고 있다. 몸집이 크면서도 살빛이 거무튀튀한 그는 쭉 찢어진 입을 크게 벌린 채, 이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물을 터는 숙희의 갸름한 얼굴을 쳐다본다. 그런 황견을 보던 숙희는 눈살을 찌푸린다.

-저건 뭐다냐? 개 아니여?

숙희와 함께 그물을 털던 봉자도 덩달아 소리친다.

-아이구메 개를 뭐에 쓸라고 저라고 온다냐. 싸게 내뿌시오.

그러나, 황견은 되레 환히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어깨에 한 아름이나 되는 것을 메고 걸어오는 그의 표정은, 만족감과 희열이 넘치고 있다.

-요것이 뭔지 안가? 개는 갠디 물개여! 물개!

숙희는 가까이 다가와서 물개를 쳐다본다. 녀석의 몸을 뒤덮고 있는 갈색 털은 윤기로 반들거린다. 물개는 그녀가 다가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녀석은 그녀의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눈빛에 감도는, 위엄이라도 불러도 좋을 그 어떤 기운에 숙희는 일순 압도당한다. 물개는 숙희를 보곤 낑낑거리며 꼬리를 흔든다.

-물개본지 수년이 된 것 같은디. 그물에 걸렸다요?

-그라지. 겁나게 운이 좋구만. 요것이 몇 년 만이여.

물개는 그냥 검은색이 아니다. 등쪽은 갈색을 띠고 있지만, 배 밑에는 희미하게나마 회색 털이 돋아있다. 그리고 물개 털은 햇빛을 받아 윤기를 번득이고 있다. 햇살은 오늘따라 황견 얼굴 위로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는 수많은 여자들이 와 하고 달려드는 것처럼 황홀해 하고 있다.

-요건 여편네들이 더 좋아허제. 요것을 묵으문 변강쇤가 뭔가…. 아무튼 자연산 비아그라여. 묵었다 허문 거시기 힘도 좋아진다고 알랑가 모르것어.

커다란 덩치에 눈이 부리부리한 그는, 얼굴이 갸름한 숙희 얼굴을 건너다보며 씩 웃어 보인다. 숙희는 늘씬한 몸매에 거무스름한 얼굴빛이 조금 야윈 듯하다. 하지만 양미간과 볼이 발그레하다. 사십대 후반으로 들어선 여자 치곤 매끈하고 앳된 얼굴이다.

-반장님! 참말로 그라요?

봉자는 감탄하듯, 윤기가 번들거리는 물개를 바라보면서 말끝을 흐린다.

-부러워? 그러면 자기도 내일부터 물개 잡아다가 종만이 삶아 먹여. 경우에 따라서는 남녀공용 비아그라가 될 수도 있은께.

그는 봉자에게 이맛살을 찌푸리고, 숙희를 향해 하얗게 흰 이빨을 내놓고 웃는다. 숙희 얼굴을 살피며 어깨에 묻어있는 생선비늘을 털어주는 척하며 그녀 손을 살짝 어루만진다. 순간 그녀는 눈알을 부라리며 그의 손을 힘껏 뿌리친다.

-염병. 엉큼허긴.

-아따! 더 늦기 전에 살 비비고 살잔께. 혼자 살문서 서로 궁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게 말하고 나자 그는 훅하고 명치끝이 달아오른다. 그는 숙희 앞으로 다가선다. 향긋한 화장품 냄새와 살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든다. 그는 허옇게 눈을 굴리며 그녀를 그렁하게 바라본다. 순간, 숙희 허리를 부여안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나 그는 참는다.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다. 씁쓸하면서도 구수한 담배연기가 울렁거리는 가슴속을 싸고 돈다. 그러자 줄에 묶여있던 물개가 킁킁거리며 허옇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린다. 그는 그런 물개를 쏘아본다. 물개는 젊은 수컷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귀가 오목하고, 눈이 반짝반짝 생기가 넘쳐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해구신을 먹으면 그도 물개가 될 것 같다. 소금기와 비릿한 바닷바람 속에서 담배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시고 다시 한번 숙희를 바라본다. 그의 가슴속으로 짜릿한 울림이 온다. 그 떨림이 배꼽 아래로 번져간다. 그는 그녀의 실팍한 엉덩이를 보곤 꿀꺽 침을 삼킨다.

-어머. 뭔, 염병 헌다고 나를 그런 눈으로 보요?

황견은 순간 움찔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콧구멍 평수를 넓히며 능청스럽게 그녀의 실팍한 엉덩이를 다시 한번 아래위로 쓸어내린다.

-어이! 물개 잡아 묵고 우리 한번 잘해보제. 죽으문 썩어질 삭신 애끼서 뭣, 한당가. 좋은 게 좋은 거제. 안 그랑가?

-염병 허는 소릴 허고 자빠졌네.

숙희는 가느다란 손바닥으로 황견 등짝을 짝, 소리가 나게 때린다. 물개는 몸과 머리를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다. 잡아먹는다 말 때문일까? 물개의 까만 눈동자가 문득 처연하게 흐려진다. 등선을 따라 곱게 자란 밤색 털과 녀석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는 지느러미 팔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암컷을 만나 적당한 장소에서 종족을 번식시키러 다니다 걸린 놈처럼 산뜻한 선홍빛의 무기가 섬뜩하게 부풀어있다.

물개가 황견을 향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낑낑거린다. 냄새를 맡기도 하고, 주위를 빙글빙글 두어 바퀴 돌면서 털이 돋은 아랫배를 바닥에 비비기도 한다.

-요놈이, 그물에 걸렸을 때 힘이 어찌나 시든지. 온몸에 저릿저릿 전기가 오드랑께. 요놈을 묵으문 다른 약발은 안 받는당께.

황견은 신이 나서 말한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듯 우쭐해한다. 그는 물개 앞으로 코를 박으며 굵은 밧줄에 묶여있는 녀석의 목에 밧줄을 한번 더 감는다. 그때 물개가 목을 비틀며 비명을 지른다. 물개는 그 자리에 서서 허리를 꼬며 입을 앙다물고 버틴다. 황견도 밧줄을 틀어쥐며 물개를 따라 힘을 쓴다. 황견은 숙희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번 히죽 웃어주고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때 봉자가 나선다.

-나는 물개 아니어도 저녁마다 징그럽소.

호기심 어린 눈길로 물개를 들여다보고 있던 봉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오소소 떨어댄다. 봉자는 종만이 험담을 늘어놓는다. 다른 일에는 힘이 없어 빌빌거리면서도, 그쪽으로만 힘이 쏠렸는지 저녁마다 보챈다고 고개를 흔든다. 물개를 끌고 방파제로 가려던 황견이 숙희를 힐끔 쳐다보고 한마디 내던진다.

-남들은 보챈다고 날린디. 우리도 잘해보세. 엄씨가 단내를 핑김시롱. 내색을 안 헌단 말이여. 가만 본깨 임자가 발정기 같어. 얼굴 색도 오르고 말이여. 안 그랑가? 야구도 대타가 있는디. 대타 필요허문 신호를 보내소. 요 물개 힘을 보고 싶으면 말이여.

황견 말에 숙희는 눈을 부라린다.

-저런, 방정맞은 입은 맨 날 그것 야그여. 입으로 양기가 올라갔고. 개 풀 뜯는 소리만 허고 자빠졌어.

숙희 눈 초리가 빠듯하게 치켜올라가 있다. 속에서 잔뜩 울화가 치미는 모양이나, 꾹 누르는 표정이 곁에서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지경이다. 그녀는 속에서 부글부글 괴어오르는 것을 누르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짝 불알 주제에 밝히기는 오살나게 밝혀.

울화 끝에 튕겨 나온 소리라, 말꼬리가 칼끝같이 솟아오른다. 황견은 짝 불알 소리에 울컥 소리를 지른다.

-뭐! 짝 불알? 이런 씨부랄 여편네가 있나. 그래. 찰 것을 하나 덜 찼다. 워쩔거여. 언제 한번 조봤어? 나가 짝 불알인지 우찌게 알어. 언능 말못혀."

-종만씨가 그럽디다. 그래서 거시기 한다고.

황견은 짝 불알이라는 말에 퍼렇게 독이 올라 있다.

-오늘 저녁 이래도 존께, 내방에서 보세. 짝 불알 성능을 시험해봐.

황견 말에 숙희는 눈을 홱 뒤집으며, 바득 이를 악문다.

-워매, 저런 변태같은 인간 좀 보소. 말도 가려 감시롱 혀야지. 나가 미쳤소. 황견씨 방으로 가게.

숙희는 금방이라도 황견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다. 황견도 환장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랬다. 그는 태어날 때 불알 한쪽만 달고 나왔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늘 놀림감이 되었다. 때문에 짝 불알이 그의 이름이었다. 어엿한 이름을 놔두고, 극성스럽게 그것만 건드렸다. 그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 또 짝 불알이 나온 것이다.

-숙희야! 종만씨가 그랬다고 그라문 안돼제. 쌈 난당게.

옆에서 킥킥거리고 있던 봉자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숙희 허리를 꾹 찌른다. 황견은 그 급한 성질에 화를 누르고, 씩씩거리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예편네. 인자 잊고 살 때가 되았는디. 나보고 짝 불알이라고. 이런 씨부랄 예편네가 있나. 종만이 이 싸가지 없는 놈, 기본기가 뭔지도 모르는 새끼, 죽었다고 복창해야 될 거여. 요놈의 새끼를 그냥….

그는 꾹꾹 눌러둔 짝 불알이라는 말에 순간 한바탕 사고 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씨부랄. 이놈에 물개 거시기를 묵고 확 그냥.

황견은 그물 작업장으로 걸어가는 숙희 뒷모습을 향해 피 섞인 침을 뱉는다.

-오냐, 두고 보자. 나가 기어코 이 분풀이를 허는가 안 허는가 봐라.

그는 물개의 큰 생식기를 힐끗 쳐다보고 방파제로 끌고 간다. 그러자 물개는 황견을 향해 허옇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린다. 그런 물개를 물 속으로 밀어넣고 밧줄을 감아 물개를 묶어놓는다.



일은 포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철이 지나면 선주들이 그물 보수를 의뢰한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일거리가 들어온다.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하얼빈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쪼그리고 앉아서 그물코를 보수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물을 손질하고 문득 고개를 들어도 보이는 건 파도뿐이다. 파도는 해안이 가까워지면서 끝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무너진 파도 끝이 하얗게 변하면서 치솟아 오른다. 그런 채로 있는 힘을 다하여 자갈밭까지 달려와 휩쓴다. 파도는 해안 가까이 달려오면서 도르르 말면서 넘어지고 만다. 하나가 먼저 밀려와 자갈밭에 넘어져 깨어진다. 그 뒤를 따라서 또 하나가 겹쳐지며, 깨어진다. 얼핏 보면, 똑같은 파도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파도는 제각각 바다에 다른 집을 짓고 산다.

하얼빈 사람들도 파도 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작업을 한다. 긴 그물 줄을 걷어 올려 허리띠에 두르고 날카로운 바늘로 한 땀 한 땀 그물코에 찔러넣는다. 그물코를 무릎 위로 걷어올려, 긴 대나무 바늘로 아예 싸 감듯이 듬성듬성 돌려 다시 촘촘하게 실을 끼워 넣는다. 어떤 이는 찢어진 구멍을 메우기 위해 그물을 겨드랑이 밑으로 돌려 젖가슴에 붙이고 그 위로 감기도 한다. 이때 여자들의 젖가슴이나 실팍한 엉덩이의 일부가 밖으로 드러난다. 낯뜨거울만큼 드러났다가 아찔할만큼 아슬아슬하게 감추어지기도 한다. 가끔 그물을 일부러 떨어뜨리고 그것을 다시 들어올리는 체하면서 은밀한 부분을 훔쳐보곤 한다. 그러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키득거리기도 한다.이들 가운데서는 황견과 종만이 그것, 훔쳐보기를 좋아한다. 여느 때는 킬킬거리면서 진저리를 치기도 하고 군침을 삼키기도 한다.

하얼빈물살은 사리 때보다 덜할지라도, 여느 사리 때의 그것보다 훨씬 세차고 또 많이 밀려든다. 물살은 짙푸르거나 희뿌연 물 갈래가 여럿 생기고, 모래사장이나 자갈밭 안의 검은 바위들은 모두 물 속에 잠긴다. 황견은 물개를 떠올리고 몇 번이나 그것을 생각한다. 여자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모두가 자기만 쳐다보고 은밀한 상상을 할 것 같다. 그는 또 숙희 생각에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생각만 해도 황홀해서 그만 감당 할 수 없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곤, 바지를 내리고 부신 눈으로 자기 모습을 내려다본다. 물개만 생각해도 효능이 뻗쳐 나오는 것 같다. 하여, 그대로 숙희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 만 같다. 그리고 그녀가, 저 찬란한 햇살을 타고 그의 품으로 안길 것만 같다. 황견은 방파제에서 오줌을 갈긴다. 오줌줄기가 바닷물을 가르고 파고든다. 그는 심하게 부르르 떤다.

-뭣하는 짓이다요. 남들 눈도 있는디.

-오줌 누는디. 봉자가 뭔 상관이여.

보려고 한건 아니지만 봉자는 오줌발이 세차게 뻗어나가고 있는 황견 거시기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녀는 사뭇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은근하게 묻는다.

-아이고. 반장님, 그 물개를 혼자 먹을라요. 나도 쪼까 주시오. 종만씨 먹이게. 그래봤자. 쓸 때도 없은시롱. 그 물개가 무지하게 거시기 헌단디. 월매나 힘든 밤을 보낼까? 근디 참말로 효까가 있다요?

걸핏하면 험악한 욕설을 퍼부어 대던 여자가 어쩌면 저렇게도 나긋나긋하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아랫입술을 씰룩거리는 입에서 쿠릿한 입 냄새가 난다. 거기다가 몸에서 무슨 냄새가 피어올라 견딜 수 없을만큼 역하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는 사뭇 진지하다. 그러면서 은근한 눈길로 그의 아랫도리를 슬쩍 쳐다본다. 황견은 두 눈에 힘을 주고 툭 내뱉는다.

-나가 아무리 발정기가 와도 임자만 보문 바로 스님이 돼야분깨 저만치 떨어져.

그 말에 부화가 올랐는지 앙칼지게 쏘아본다. 노려보는 눈초리는 쉬 가라앉지 않는다. 봉자 눈빛은 여전히 날이 서 있고 발끈해 있다. 그리고 황견 뒤통수에 주먹 한 방을 날린다. 저녁 햇살의 자투리 기운이 그들 볼 쪽으로 옮겨오고 간혹 방파제로 튀어 오른 물방울이 물 자국을 만든다. 황견은 문득 바람을 느낀다. 아랫도리에서 화끈한 불기운이 인다. 잡아 버리지 않으면 그 불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타올라 버릴 것만 같다. 그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언제고 꼭 숙희를 자빠뜨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친 파도가 달려와 젖은 살갗들을 쓸고 핥아 올리는 것 같다. 미세한 물방울이 쪼개져, 그의 몸 속에 고루 퍼져오는 느낌이다.

황견은 끄응하고 헛기침을 한번하고는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방파제 안으로 접어든다. 하얼빈에서 일하는 남녀들의 빗발치는 물개소리에 더 이상 물개를 묶어 놓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 앞에서 간만에 품 한번 잡고 인심 쓰는 것도 좋지만 숨을 헐떡거리고 죽어갈 녀석을 생각하자 마음이 섬뜩해진다. 그는 방파제를 쳐다본다. 흘긋 더듬던 그의 두 눈이 확 커진다. 밧줄이 보이지 않는다. 물개를 묶어놓았던 곳으로 뛰어간 그는 온몸의 관절이 녹작지근 떨리는 것 같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한 때의 멍한 기분이랄까. 머리가 무거워지며 뒤죽박죽 혼란이 온다. 그는 방파제에 매달아 놓았던 곳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바람만이 텅 빈 바닷속을 채우고 있다. 물개가 보이질 않는다. 그는 상황을 대강 어림짐작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필요 이상으로 야물고 똑똑한 체하는 종만을 생각한다. 그는 봉자와 정을 통하면서도 유독 숙희에게 눈길을 주곤 했다. 황견은 그런 종만이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려. 상려르종자. 워떤 물갠디 니가 사고를 쳐부러. 나가 알아봤어. 여자이야기만 나오문 개 풀 뜯는 소리만 허고 말이여. 니는 죽었다. 오늘이 니 제삿날이여.

그는 하얼빈 작업장으로 내달린다. 비릿한 냄새가 뛰어내려오고 여기저기서 비늘이 날린다.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반장님하며 너스레를 떨던 종만이 얼굴을 떠올리며 방파제 너머 자갈밭을 바라본다. 찰싹찰싹 자갈밭을 핥으며 부서지는 물결들이 햇빛을 받아 고기비늘처럼 빛나고 있다. 몸집이 작고 조그맣지만 다부지고 오기 많은 종만이의 툭 불거진 얼굴을 생각하며 입술을 깨문다. 황견은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린다. 그는 바특한 가래침을 혀끝에 뭉쳐 탁 내뱉는다. 그는 팔이 무슨 칼이나 된 듯이 휘두르며 내달리기 시작한다. 황견은 곧장 그물코 보수작업이 한창인 하얼빈 야적장으로 달려간다. 작업장에 널려있는 그물위로 바람이 쌩 하고 지나간다. 바람소리는 그물 안으로 파고든다. 때문에 그물 줄이 바람에 쓸리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낸다. 거기서 남은 소리가 밖으로 퍼져 하얼빈을 울린다. 하얼빈을 울리고 있는 그물 터는 소리는 더러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고, 더러는 파도를 타고 올라가서, 하늘까지 스며든다. 황견은 씩씩거리며 작업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 자식아, 물개 내놔. 이 되다가 만 자식아.

그는 종만을 붙잡고 잡아먹을 듯이 두 눈을 부라린다.

-이런 제미, 으째서 나를 잡고 소릴 지르고 그라요?

황견은 종만이 멱살을 더욱더 틀어잡아 올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물코 보수작업을 하던 종만은 불의의 습격에 한순간 기선을 제압 당한다. 그러나 순간, 그는 황견을 뒤로 홱 떠밀어버린다. 황견은 뒤로 벌렁 나가떨어진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대번에 종만이 따귀를 한대 갈긴다.

-이런. 씨부랄. 뭣 땜시 지랄이여. 그 물개가 어쨌다는 거여.

-아야! 니가 숙희씨 헌테 나가 짝 불알이라고 말혀도 참었다. 근디 니가 물개를 훔쳐야? 짝 불알도 뭐헌디. 물개까징 넘봐? 좆만이 새끼.

황견은 종만이 멱살을 흔들며 광분을 한다. 굵은 가래침이 거무스름한 종만이 얼굴로 튀어간다. 종만은 얼굴에 튀어온 침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두 눈을 부라린다. 환장하겠다는 표정이다.

-아따! 뭔 일인지. 설명부터 해 보시요.

-설명? 이런 좆만이 새끼. 짝 불알이라고 니가 소문 내고 댕겼냐? 안 댕겼냐? 글고 나 물개를 슬쩍혔냐? 안혔냐? 빨리 말못혀.

-아따! 나가 술자리에서 장난으로다가 한번 야그 했소. 그 문제문 나가 실수혔소. 그라고 물개는 나허고 아무 상관이 없소. 진짜 모르는 일이요.

-워메! 이런 씨부랄 새끼를 직이지도 못혀고, 살리지도 못혀고, 우짤끄나. 니 한번 더 경고 혀는디 빨리 물개 내놔. 니 죽고 나 죽는 거여. 알아들었냐?

황견은 흥분하여 아주 막말을 한다. 그는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문다. 두 사람은 으르렁대며 부들부들 몸을 떨어 대고 있다. 순간, 종만은 황견 가랑이 사이로 파고든다. 그러나 황견은 가랑이를 좁히며 무릎으로 냅다 걷어찬다. 억 소리가 난다. 그는 배를 감싸고 나동그라진다. 마음만 앞섰지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종만은 자갈밭으로 나가떨어진 채 악만 써댄다.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몰려와 싸움을 말린다.

황견은 양 미간 사이로 주름살을 모으고 험상궂게 쳐다본다. 종만은 들고 있던 대나무 바늘을 바다로 던져버린다. 그 대나무 바늘은 하얼빈 사람들의 앙금으로 옹이 맺혀있는 물건이다. 이렇게 한 무더기 그물위로 굳어 앉아 하얼빈을 지켜주던 물건이다. 그것은 단순한 대나무라기보다 맺힌 삶이다. 그 삶이 너무나도 단단히 뭉쳐서 오늘도 그물을 퉁겨 올리고 있다. 그물조각의 아픔을, 그 한 조각의 삶이 그렇게 매운 것이라 느끼면서 견뎌왔다. 그런 물건을 미련없이 던져버린다.

-대나무 바늘 주서와! 싸게. 칵. 이 자식을 그냥.

종만은 분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돌아선다.

-들레뿐 대나무 바늘 갔다놓고 가란 말이여! 이 자식아, 니가 시방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냐, 물개는 물개고. 대갈통을 부수기 전에 싸게 주서와.

그러나 종만은 와락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붙잡는다. 한참 잡고 실랑이를 부리는 것 같더니, 황견이 다시 한번 배때기를 냅다 차버린다.

-윽!

종만이 발랑 뒤로 나가 떨어진다. 하얼빈에서 반장으로 굴러먹던 가락이 있어, 제법 빠르다. 종만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에 불을 켠다. 그러나 황견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종만을 노려본다. 만만찮은 기세다.

-이참에는 대갈통에 국물 흘러.

황견이 어르자 그는 달려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다.

-물개가 누구 건디 함부로 손을 대. 일단 물개 내놓고, 존말 헐 때 대바늘 주서와. 얼른!

종만이 달려들려고 하자 그는 다시 자세를 잡는다. 여차하면 또 발 차기가 들어갈 판이다. 황견에게 저런 완력이 있는 줄을 미처 몰랐던 그는 이미 기가 죽어 있다.

-이런. 염병할. 오늘은 나가 참소. 어디 두고봅시다.

종만은 그래도 한마디 오기 진 소리를 남기고 돌아선다. 그는 그 길로 휭하니 어디론가 가버린다.

-나가 저런 새끼 열 놈이 오먼 못 당할 줄 알고, 상놈의 새끼 대가리를 그냥.

별 몇 개가 수평선 위로 노랗게 떠오르고 있다. 그는 인기척에,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방문을 연다. 어둠이 더욱 짙어 보인다. 황견은 밖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그 어둠 속에서 별똥이 떨어져 내리는 것도 같고, 반딧불이가 나는 것도 같다. 누가 왔을까. 그는 등줄기를 젖히고 심호흡을 한다. 그는 다시 방문을 닫고 잠을 청한다. 그때 또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끙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순간, 그의 신경이 벌겋게 곤두선다. 방문을 열고 바라본다. 종만이 문 밖에 엉거주춤 서 있다. 한 쪽 이마와 두 눈이 퍼렇게 멍들어있다.

-어이, 종만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가? 정신 차리고 말 좀 해 보소.

그는 황견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이가 부스러지도록 악문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미세하게 온 몸을 떨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재빨리 뛰어나가 종만을 방안으로 들인다.

-어이, 정신 차려. 우찌게 된 일이여?

그래도 그는 비명같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떨어대기만 한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종만 얼굴을 들여다보며 거듭 묻는다. 그는 종만이 웃옷을 벗기고 가슴팍을 살펴본다. 검붉은 생채기가 있다. 겉으로 나타난 생채기는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살갗 속에서 피멍이 멀겋게 비쳐 보인다.

-어디 가서 누구한테 이렇게 맞았는가?

그는 눈을 뜨지도 않고, 입을 열지도 않는다. 일그러뜨린 얼굴 근육하나 꿈쩍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가 다시 소리쳐 물어도 마찬가지다. 가슴 한복판이

하얼빈에는 물개가 산다 (2)
가쁜 숨결이 목에 걸린다 그는 그대로 가라앉는다
"정신이 좀 드요? 나가 누군지 알아 보것소?"
따스한 입술이 그의 입술에 부딪힌다

그림 남학호
그림 남학호
시퍼렇게 뚫린 하늘처럼 휑하게 비어 온다. 그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한참동안 멀거니 종만을 건너다보고 있다. 그러던 그는 문을 박차고 어둠이 수런거리는 마당을 건너 봉자 집으로 향한다.

드넓은 바다 저쪽에서 밀려온 파도들이 하얼빈 자갈밭으로 넘어오고 있다. 아니, 쓰러지고 있다. 다른 때에 비해 파도줄기가 굵고 옹골차다. 거기다가 바람이 꽤나 세차게 불어온다. 그는 그런 파도와 바람을 뒤로하고, 돌을 걷어차며 헛기침한다. 그 소리에 언덕길에 깔려 있던 밤 안개가 몸을 떠는 듯싶다. 그에게 욕을 퍼부어 대던 종만이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적당한 시기를 보아서 화해 할 생각이었다. 설사 그가 물개를 가져갔더라도 그냥 묻어두려 했다.

황견은 물개를 먹어 본적이 없다. 그물에 걸려있는 물개를 잡기는 했어도 녀석의 목에 칼끝을 밀어넣을 자신이 없었다. 순간, 물개의 산뜻한 눈빛이 생각난다. 해맑은 눈으로 벌렁벌렁 숨을 몰아쉬던 녀석은 귀엽기까지 했다. 그 처연한 눈빛 때문이라도 물개 살덩이를 입 속으로 넣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랬다. 그는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던 눈빛이 보고싶어 녀석에게 고등어 토막을 먹였다. 그런 물개를 방파제에 매달고 뒤돌아 섰을 때에도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문득 처연하게 느껴졌다. 종만이와 물개를 생각하자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큰산 위로 수많은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는 대밭 모퉁이로 들어선다. 대숲은 새까맣게 물이 들어있다. 숨결 같은 바람만 조금 불어도 호들갑스럽게 출렁거리곤 하던 대숲은 거칠어지는 바람에 휘청 고개를 꺾는다. 아득하고 깊은 동굴처럼 거멓게 뚫리어 있는 대숲 사립을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선다.

-봉자 있는가? 나 반장인디. 종만이 일로 왔구만.

대문 앞에 선 채 그는 소리친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집이 비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는 몸을 돌린다. 귀에 파도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여느 날 밤과는 달리, 깊은 바다 위의 밤 안개는 음험하게 수런거리고 있다. 자꾸 한숨을 쉬며 엎치락뒤치락하던 종만 얼굴이 설핏 떠오른다.

켜켜이 쌓여 있는 밤 안개 속에 검은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방파제 한가운데로 길다랗게 뻗어 나간 안개가 바위를 옆구리에 낀 채 그 위로 기어올라오고 있다. 방파제에 묶인 닻줄은 바닷물 속으로 뻗어있다. 팔뚝같은 밧줄은 바다 속을 향해 탱탱하게 시위를 당기고 있다. 그는 방파제 옆으로 다가가다 인기척을 느낀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바위 밑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듯싶다. 그 희끗한 것이 뿜어내는 숨결과 온기를 감지한다. 여자는 방파제 옆에 서있는 커다란 바위에 몸을 숨기고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때, 그 쪽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소리가 얼핏 들려온다. 귀에 익은 소리다. 기어이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 여자는 울고 있다. 먼바다에서부터 달려온 굵직한 파도들이 바위를 향해 몰려온다. 그렇지 않아도 물에 질펀하게 잠기어 있던 바위는 밀려든 파도 때문에 물 자국으로 뒤덮이고 있다. 여자의 머리칼은 풀어져 있다. 곧이어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듯한 울음소리를 낸다. 황견은 크게 헛기침을 하고 다가선다. 여자는 울음소리를 죽이며 뒤돌아본다. 봉자다.

-뭔 일로다가 요럽코룸 울고 있어. 봉자답지 않게 말이여. 종만이 일허고 관계가 있는가? 실은 나도 그일 때문에 자네 집에도 가보고 했는디. 뭔 일이여?

봉자는 눈물을 닦는다. 고즈넉한 방파제에는 물보라가 쓸리고 서늘한 한기가 피어오른다. 그들의 귓전에 파도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있다.

-지는 종만씨가 있잖어요? 그란디…그란디… 우리 아자씨가 출소를 혔소. 우찌깨 알고 여그까지 와서 나를 찾아냈소. 종만씨는 우리 아자씨가 그랬소. 나가 말했소. 인자는 나를 놓아주라고. 그라고 종만씨와 떠나기로 했소.

그녀의 조그만 울음소리가 다시 새어나오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소리와 바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오랜 세월 하얼빈에서 굳게 빗장을 채우고 살아온 그녀의 삶이 검은 파도를 따라 출렁거린다. 황견은 그녀를 힐끗 쳐다본다.

-인자 가세. 종만이 혼자 두고 왔구만.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바람에 쓸려 온 듯한 비릿한 냄새가 하얼빈 구석구석 밀려다닌다. 그가 봉자를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드는데 별똥별 하나가 긴 꼬리를 보이며 뒷산 넘어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다 쪽으로 눈길을 던진다. 그 번쩍거리는 바닷물결 속에서 거칠어지는 날 선 파도를 본다. 파도는 머리를 곧 세우고 달려오고 있다.

눅진한 밤 안개가 그물이 흩어져있는 하얼빈으로 스멀스멀 퍼진다. 어둠 속에서 잡초들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어둠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비린내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는 꼬리를 물고 밀려드는 남편의 우악스러움에 몸서리가 쳐진다. 때문에 출소한 남편에게서 얻어맞은 곳이 저려온다. 남편의 혹독한 매질이 지워지지 않는 붉은 피멍울로 다가온다. 남편은 그녀가 시집간 첫날부터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술 냄새를 짙게 풍겼다. 그 술 냄새에 익숙해졌을 때엔 까닭없는 매질이 시작되었다. 시집온 첫날부터 교도소로 들어가기까지 한번도 따뜻하게 안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영문도 모르고 그 아픔을 견뎌야 했다. 그것이 결혼생활 전부였다. 그런 남편에게 두어번 면회를 갔다가 하얼빈으로 도망치듯 왔다. 온몸이 수축되는 듯한 공포감이 밀려든다.

-소문 듣고, 기다리고 있었어.

귀에 익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숙희가 길가에 서있다.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이 먼저 보인다.

-이 시간에 뭔 일이여. 짝 부랄 시험 허로 왔는가?

황견은 그렇게 말해놓고 입을 다문다. 숙희 눈이 사나워지고 있다. 그녀는 편치 않은 얼굴로 대꾸한다.

-염병. 입만 열문 그거여. 나가 황견씨 보로 온 줄 아요?

그녀는 봉자 옆에 서있던 황견을 밀어붙이고 그녀 옆에 다가선다. 봉자는 숙희를 슬쩍 바라본다. 반갑다. 늘 만나는 사람인데도 오늘은 그녀가 친자매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자기 소문 듣고 왔어. 솔찬히 걱정 되아서. 결정은 했는가?

출소한 남편과 종만이 일인 줄 알면서도 그녀에겐 숙희의 물음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모르것어. 그물 일이 정들었는디…. 종만씨 허고 떠나야제.

-스스로 고민허지 말고 자기 맘 쓰인데로 행동혀. 오늘밤이라도 종만씨 허고 떠나. 남편이 또 찾아오기 전에. 자기가 꼬매던 그물은 나가 마무리해 줄게.

그녀는 숙희의 눅눅한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불어 올린다. 긴 한숨소리가 허공으로 스멀거리다가 옅어진다.

-허긴 이 어촌에서 뭘 바라고 살겄어. 떠나지도 못허고 눌러붙어 사는 우리가 빙신이지.

봉자는 그냥 웃어 보인다.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챈 숙희는 말꼬리를 돌린다.

-아이구. 뭔 놈의 바람이 저리도 분다냐?

-바람 부는 것 첨보나? 종만이 허고 봉자씨 떠나문 우린 많이 외롭것어. 숙희가 해준 따신 밥 묵고 살문 얼메나 좋을까.

숙희는 봉자 일에 마음이 상해있는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어설픈 작업을 거는 그를 향해 쏘아붙인다.

-염병허고 자빠졌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이 이치에 맞소? 아이구. 나도 떠야 헐 것 같어. 그래야 허구헌날 염병허는 소리 안듣고 살제.



바다가 하얗게 뒤집히어 끓기 시작한다. 길다랗게 잘라 놓은 파도 줄기가 사정없이 방파제로 밀려든다. 달려드는 파도가 하얼빈에 쌓아둔 그물을 덮친다. 늘어진 그물위로 파도가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그 여파로 시퍼런 바닷물이 작업장까지 밀려든다. 황견은 그물더미를 바라본다.

-워메. 이러다가 그물이 쓸러가문 나는 아작 나는디. 큰일이여.

드높은 파도가줄기차게 휩쓸고 달려든다. 뒤집힌 바닷물은 방파제 가장자리의 중턱까지 차 올라서 하얗게 밀려들고 있다. 결코 그냥 넘기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다들 나왔는가? 그물을 좀더 위로 옮기세. 서둘러.

그들은 일제히 덤벼들어 뒹구는 그물을 밧줄에 묶어 끌어당긴다. 그리고 파도가 잠깐 밀려 나간 사이 그물을 좀더 위로 끌어올린다.

-야무게 당기란께.

황견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고 눈 또한 발끈한 기운이 서려있다.

-힘써.

-보문모르요. 까딱허문 똥 나오것소.

숙희는 한마디 쏘아붙이고 싸우듯 악을 쓰며 그물을 끌어올린다. 죽을 힘을 쓴다. 그러다가 큰 파도가 달려와 그물을 한 바퀴 더 뒤집어 버리는 바람에 인부 한 명이 그물 밑에 깔려, 죽겠다고 엄살을 부린다. 황견은 그물을 헤치고 인부를 끌어낸다. 바람은 더 세차고, 파도는 굵고 거대해진다. 배 두 척이 파도에 짓이겨지면서 뱃전과 갑판이 찢어지고 깨어져 나간다. 선창에 떠 있던 배들도 쪼개져 버렸고, 나무 조각들이 파도 위에 거뭇거뭇 떠다닌다. 방금 넘어진 인부는 숫제 허물어뜨리려고 달려드는 성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어이! 뭘 보고 있어? 빨랑와 하여간 지랄들 해요. 한번 자빠졌다고 지가 뭔 환잔 줄 알어. 글고 그물이 지 애인이여. 멀정헌 그물을 보듬고 딩굴게.

-워메 그만 허시오.

-뭣땜시 저 사람 편을 들고 드란디…?

그때 칼날 같은 빗방울이 날아와 황견 눈을 세차게 때린다. 짓 두들겨대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도록 바람이 불어온다. 그 자리에 굳어진 채 가끔씩 비틀거리면서 허옇게 뒤집힌 바다를 내려다보던 인부들이 비틀거리며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씨부랄. 힘쓰는 것 봐라. 저래 갓고 잘 허긋다. 분통이 터진당께. 이놈에 여편네들도 뭔헌디 비실댄다야. 힘들 써. 그물이 느그 애인이라고 생각허고 힘써. 물개만 묵었어도 힘이 날건디. 그놈에 물개는 어디로 사라진겨. 물개가 없은께 거시기 힘도 쪽 빠져 부렇당께.

-참말로 듣자듣자 헌께. 입이 순전히 시궁창이요. 뭔 입이 그런 입이 있다요. 사람이 좀 점찬아야지. 옆에 있으문 나까지 못쓴 여자가 되것소.

숙희가 쏘아붙이자 황견은 입만 씰룩거리고 더 이상 뭐라고 말문을 열지 못한다. 그물과 거기에 쓰는 말목과 그것들을 싣고 다니는 배들이 방파제에 부딪쳐 깨지고 있다. 선주들은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찢어진 그물과 분실된 목록을 따져 변상해내라고 윽박지를 것이다. 어제 밤에 어렴풋이 큰 비바람을 예상했다. 북서풍이 불고 그물더미가 바람이 들썩일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들었다. 어제 밤에 그물과 장비들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놓아야만 했다. 한데, 그걸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개와 종만이 일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그물을 잃어버리면 끝장이다. 선주들이 어떤 사람인가. 그들은 황견을 잡아죽이려 달려들 것이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은밀한 곳에서 숙희와 함께 새 살림을 차리고 싶었다. 그는 끙하고 방파제를 바라본다. 잇따라 돌진해 덤벼드는 거대한 파도에 그물이 쓸리어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덤벼드는 파도로 말미암아 그물더미가 바다로 빨려 들어가 흩어지고 있다. 사람들 틈에 끼어 그걸 내려다보고 있던 황견은 이를 악물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소리친다.

-이런 니미럴. 여차 허문 뭣 데것네.

그는 굵은 밧줄을 들고 뛰어간다. 먼바다에서 산 같은 파도들이 하얼빈을 향해 돌진해 온다. 그렇지 않아도 물에 잠기어 있던 그물이 밀려든 파도 때문에 더욱더 넓게 펼쳐진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자잘한 나무토막과 검은 판자조각들이 질펀하게 그물에 감긴다. 그것들은 모두 배들이 깨지고 부서진 조각들이다.

-아이구. 씨부럴. 이대로 당할순 없제. 오냐! 니가 이기나 나가 이기나 해보자.

밧줄을 방파제에 묶고 욕설을 해대던 황견 뒤로 숙희가 다가온다.

-시방 뭐 할라고 그라요? 그물에 걸리문 죽소. 운에 맡깁시다.

-살다 본께 나 걱정도 다 해주네. 운에 맡기문 자기가 나헌테 올거여. 나도 꿈이 있단 말이여. 이번 건 끝나문 그동안 저금해온 돈하고 합쳐서 아파트나 하나 살라고 그랬는디. 살림 채릴 집 말이여. 나가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어. 이참에 나 뒤져블문 개 풀 뜯는 소리도 안 듣고 좋것어.

그물은 바다로 천천히 떠밀리기 시작한다. 그는 숙희를 빤히 쳐다보고 밧줄을 허리에 감는다. 그리고 물 속으로 뛰어든다. 굵은 파도가 그의 얼굴을 때린다. 범람하는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그때 파도에 밀려든 나무 조각이 그의 어깨에 부딪친다.

-흑, 이런 염병헐 나무. 엉뚱헌게 달라붙고 지랄이여.

파도에 떠밀리던 그는 길게 원을 그리며 그물에 걸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숙희는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몸을 떨어대는 그녀 얼굴에 바늘 같은 빗줄기가 할퀴어댄다. 구름이 빙글빙글 돌면서 달려오고 있다. 그 구름들 사이로 푸른 불이 번쩍인다. 이어서 땅과 하늘을 동시에 찢어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빗방울이 더욱 굵어진다. 눈앞에서 뽀얀 비안개가 인다. 그녀는 자꾸 두려워지고 무서워진다. 등줄기로 흐르는 전율 때문에 자꾸 불안해진다.

황견은 파도에 휩쓸리는 그물 옆으로 바짝 다가간다. 차가운 물줄기가 통째로 뒤집어온다. 그는 떠밀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면서 그물에 밧줄을 매단다. 자꾸 그물 속으로 밀리는 몸을 뒤로 빼며 매치고 있다. 얼음물같이 차가운 바람이 날아와 그의 온몸을 감싼다. 비바람은 한층 더 거세어지고 있다. 몸은 급속도로 식어간다.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어깨도 부자연스럽다. 짠 바닷물이 입안으로 들어온다. 빨리 그물에서 벗어나야 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그대로 경직되어 한 끝도 움직일 수 없다. 가쁜 숨결이 목에 걸린다. 그는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 얼핏 불길한 예감이 든다. 급기야 정신이 아득해온다. 그는 그대로 가라앉는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뿌걱, 뿌걱, 뿌걱'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물개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흐…흐…흐…물개울음소리는 황견 입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손으로 무언가를 더듬는다.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빠져나간다. 그때 무언가가 그를 끄집어올린다. 누군가가 몸을 흔들면 악을 쓴다. 그는 어렴풋이 몸이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끙끙 앓으면서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무어라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곧이어 경련을 일으키곤 먹은 것들을 모두 토해 버린다.

-정신이 좀 드요. 황견씨. 나가 누군지 알아 보것소?

그는 하얼빈 임시 창고에 몸을 뉘인 채 정신을 잃고 있다. 숙희는 다시 한번 인공호흡을 한다. 따스한 입술이 그의 입술에 부딪힌다. 알싸한 입 냄새에 정신이 조금 돌아온다. 그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숙희를 본다.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뜨거운 입김을 그에게 밀어넣고 있다. 머리털이 곤두설 듯한 물개 힘이 그의 아랫도리로 몰린다. 황견 입술이 벌어진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숙희 입으로 숨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녀 허리로 두 손을 감아 올린다. 순간 그녀는 심하게 온몸을 부르르 떤다.

-정신이 드요?

-진직 물에 빠질걸. 왜 미처 그걸 생각 못했을까. 인자 풀 뜯을 필요 없어.

-염병. 여그서… 안되는디…워메! 물개는 나가 풀어 주었는디, 물개가 또 있어 부렀네.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인공호흡을 한다. 이번에 실시하는 응급처치는 사뭇 격렬하다. 황견은 그녀를 덮쳐 누르고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킨다. 얕고 깊게,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숙희는 으스스 몸을 떤다. 찰싹찰싹 자갈밭을 핥으며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섞여, 물개울음소리가 불끈불끈 피어오른다. 그때 여명처럼, 솟아오르는 물체가 반짝 바다위로 떠오른다. 물개 한 마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윤기 나는 털을 오소소 턴다. <끝>

 

영남일보문학상 당선소감.심사평

<김춘규·김원일·염무웅>

"감성과 이성의 균형 잃지 않겠다"
*당선 소감...김춘규

△1967년 전남 여수 출생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아침이면 커피를 마신다. 길고 긴 어둠을 밀어내고 푸른 해면 위를 고래처럼 솟아오르는 여명을 보며. 나는 그 어둠처럼, 오랜 시간 동안 문학의 밖에서 문학을 동경했다. 때로는 동경하는 일만으로 자꾸만 힘들어지고, 등지고 살았던 긴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글쓰는 일에 자꾸만 마음을 뺏겨 다른 일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했다. 이제 문학이라는 방으로 조금 발을 들여놓고 유영할 수 있는 작은 먼지라도 된 것 같아 기쁘다. 내부에 꼭꼭 숨어있는 원석들을 꺼내어 정성스레 갈고 닦아, 독특한 빛을 내보이고 싶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늘 고민하던 내게, 길을 찾아주시고 격려해준 안광진 선생님, 시시콜콜 쓴 작품도 아무런 내색 없이 다독여 주신 고마운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언제나 좋은 생각을 나누어주는 김길수 선생님, 곽재구 선생님, 송수권 선생님, 모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끝까지 나를 믿어주시는 부모님과 아내 조지은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이제 남은 것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인 것 같다. 글쓰기의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균형과 노력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드린다.

끝으로 내가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향보다 더 매혹적인 문향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숙여 깊이 감사를 드리며, 나에게 작가의 가능성이라는 씨앗을 품게 해준 이청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생명의 건강성 추구 작가정신 돋보여"
*심사평...김원일.염무웅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선자들의눈을 오래 끌어당긴 작품은 '선인장 가시' '미몽' '쇠기러기 깃털' '하얼빈에는 물개가 산다' 등 4편이었다. 이렇게 여러 후보들이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편으로는 응모작의 수준이 고르게 향상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눈에 번쩍 뜨이는 탁월한 재능이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몽'과 '쇠기러기 깃털'은 아주 비슷한 주제를 극히 대조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전자는 이 시대의 모순의 핵심으로서 교육의 붕괴와 인간성의 기계화를 미래소설적 구도 속에 담고 있다. 그런데 결말의 처리가 SF영화의 뻔한 상투성으로 귀결되어 맥빠지게 한다.

후자 역시 오늘의 교육 현실에 대한 거의 동일한 문제의식을, 그러나 전자와 달리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대목 같은 데서는 자못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밀도가 약하고 평면적이다.

'선인장 가시'는 잘 짜여진 구성 안에 고단한 인생 이야기를 무난하게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경우 무난하다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란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흠을 상쇄하고 남을 만한 어떤 통렬함의 성취를 통해 이룩되는 것 아닌가.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한 '하얼빈에는 물개가 산다'가 앞의 작품들보다 단연 뛰어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사건다운 사건없이 소설이 진행되어 지루한 느낌도 주는데, 그것은 작가의 입심을 보여 주는 측면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서사적 골격의 허약성을 반증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문장도 상당히 거칠고, 특히 대화부분은 작위적일 만큼 주로 성적 암시에 치우쳐 있다.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오늘날과 같은 개인주의적 왜소화의 시대에 원시적 생명의 때묻지 않은 건강성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의 저력이 돋보인다. 당선자의 힘찬 정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