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 개구리 요리를 하는 시간 / 이상금

시인 최주식 2010. 2. 5. 23:50

개구리 요리를 하는 시간 / 이상금

 사슴농장은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병원에서 이어진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과 사슴농장의 철망 울타리가 맞닿아 있다. 산책로는 조붓한 오솔길이나 다름없다. 입원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답답함을 덜어보려고 산을 오르면서 자연스레 길이 생긴 듯하다.
 은별이가 입원한 이후로 나는 늦잠을 잔 적이 없다. 새벽이면 눈이 떠졌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끼우, 끼우하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소아암 병동이 중환자실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므로 그곳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았다. 어쩌면 통곡소리 같기도 하고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보다 더 호소력이 있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슴농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가본 적은 없어요. 장기입원환자의 보호자라서 병원에 대해 꿰고 있는 나라 엄마가 무심결에 흘리던 얘기를 나는 떠올렸다. 사슴농장에 가보리라. 밤새 뒤척이던 은별이가 곤한 새벽잠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병실을 나섰다. 사슴농장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끼우거리는 소리는 가끔씩 이어졌고 그 소리를 따라 산책로를 걸었더니 사슴농장이 나타났다.
 새벽 안개가 옅게 끼어 있다. 사슴들은 철망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 우리에 대여섯 마리씩 갇혀 있다. 사슴 우리는 철망벽끼리 바투 연결되어 있어 비좁은 감옥을 연상시킨다. 바닥은 차가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한쪽엔 사료를 넣어주는 구유가 있다. 또 다른 바닥은 풀이 짓이겨지고 파헤쳐져 있다. 사슴들은 밤새 깨어 있었던 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다. 저 넓은 산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이다. 허름한 옷차림의 목부가 구유에 사료를 부어주고 감잎을 던져준다. 사슴들은 먹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먼 산바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철망에 뿔을 비비거나 구경객들을 바라본다. 목부가 철망의 구멍을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밤마다 이렇게 구멍을 뚫어놓으면 어떡하니. 목부가 뒷주머니에서 펜치를 꺼내 끊어진 철망을 이어놓는다. 철망은 곳곳에 기운 자국이 있다. 나는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온다.
 병실은 아직 조용하다. 6명의 어린 환자들과 보호자인 엄마들은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세안을 하고 옅은 화장까지 한다. 푸슬푸슬한 머리를 하고 곧 죽을 것 같이 궁상을 떠는 사람들과 다르고 싶어서이다. 수건을 물에 적셔 은별이 얼굴을 닦아준다. 얇게 쌍꺼풀이 진 눈두덩이와 둥글게 튀어나온 이마, 볼록한 볼을 살살 문지른다. 손등과 팔목안쪽은 성한 곳이 없다. 온통 주사바늘 자국으로 멍들어 있다. 조심스럽게 수건을 움직인다.
 주치의 김수영 박사가 들어오고 전문의, 수련의에 이어 의대생들까지 들어와 은별이 앞에 선다. 포스트 아라시 오십일쨉니다. 수련의가 김박사에게 보고한다. 수련의는 아라시라는 항암제를 쓰고 나서 매일 아침에 반복해 온 혈액검사 결과를 읊조린다. 백혈구 수치, 헤모글로빈 수치, 혈소판 수치 등이 아직 정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항암제 때문에 암세포와 함께 숱하게 파괴되었다. 나는 항암제를 독이라 부른다. 좋게 말해 필요악이다. 더 두고 봅시다. 김박사가 나가고 뒤를 따르던 전문의, 수련의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따라나간다.
 의사 일행이 나간 뒤 퀵서비스 배달원이 들어와 상자를 내게 건넨다. 상자를 열자 그물 가방이 있다. 그물 속에는 개구리 열 마리가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듯 납작 엎드려 있다. 가을이라 개구리 몸체는 누르스름한 빛을 띤다. 영글대로 영근 뒷다리 근육이 몸통의 움직임에 따라 굼실거린다.
 나는 병실과 면한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개구리 뒷다리를 들어 올린다. 제법 살이 단단하게 올랐다. 뒷다리를 손가락으로 탁탁 퉁겨 본다. 단단한 공을 튕기는 소리가 난다. 이 정도면 만족한 수준이다. 나는 도마 위에 개구리를 올려놓고 두 개의 칼을 꺼내든다. 처음에는 만지지도 못해서 그물을 열어 끓는 물에 통째로 쏟아 넣은 적이 있다. 개구리들이 솥벽으로 기어올랐다가 툭툭 떨어졌다. 유리뚜껑을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잠시 후 개구리는 사지를 뻗으며 물 위에 떴다. 나는 뚜껑이 김으로 덮여 뿌옇게 될 때까지 들여다보았다. 삶은 개구리 요리는 먹지 못했다. 내장과 껍질에서 나온 역겨운 냄새 때문에 죄다 버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개구리를 재료로 한 것이라면 어떤 요리도 할 수 있다. 개구리 샐러드, 개구리 스튜, 개구리 매운탕, 개구리 커틀릿, 개구리 냉채, 개구리 피자, 개구리 카레……. 오늘의 요리는 개구리 탕수육이다.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드르륵 떤다. 규한이다. 나는 받지 않는다. 진작에 휴대폰 번호를 바꿨어야 했다. 은별이를 혼자 놓고 병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예전의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다. 그건 핑계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액정에 찍히는 규한의 전화번호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 연락을 안 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규한은 여전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음성녹음을 한다. 무슨 일이야? 왜 잠수를 하는 거지? 네가 어디를 가든 찾아 낼 거야. 액정에 찍히는 그의 번호는 살아 있다. 걸러지지 않은 채 튀어나오는 나의 광기가 있고 욕정이 폭발하던 때의 기억이 있다. 나는 휴대폰의 액정에 뜬 번호를 손으로 문지른다. 규한. 살며시 불러본다. 숫자가 사라지고 ‘부재중전화 1통’이 찍힌다. 플립을 열어 규한의 번호를 지운다. 그대로 둔다면 나는 전화를 걸고 싶은 욕망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잠시 후 액정은 꺼진 브라운관처럼 암전된다.
 개구리를 도마 위에 놓고 뒷다리를 손으로 누른다. 개구리가 짧은 앞다리와 머리를 움직이며 버둥거린다. 뒷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자 앞다리가 내 손등으로 올라온다. 불쑥 튀어나온 눈, 놈이 나를 노려본다. 칼등으로 개구리 머리를 내려친다. 개구리는 몸통을 들면서 완강히 저항한다. 나는 칼등을 그대로 머리 위에 놓고 누른다. 머리는 그다지 필요한 먹잇감이 되지 못한다. 이번에는 작고 날카로운 칼을 이용해 뱃속의 내장을 들어내고 머리를 잘라낸다. 짧고 살이 없는 앞다리도 과감히 제거한다. 뒷다리의 물갈퀴를 잘라내고 발목에 칼집을 내어 얇은 피부를 잡아당긴다. 손에 개구리 피부에서 나온 축축한 분비물이 묻는다. 다리에 연분홍색 살집이 드러난다. 몸통과 뒷다리만 남은 개구리의 근육이 파들파들 떨린다. 개구리살을 두께 1센티미터 길이 5센티미터 안팎으로 자른다. 보울에 담아 간장, 후추, 생강즙으로 밑간을 해 둔다. 화장실 바닥은 염소세제를 사용해 닦아낸다. 그래도 남아 있는 비린내는 환기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취사실 한쪽에는 몇 대의 전자레인지가 있고 반대쪽에는 전기 풍로가 놓여 있다. 병실에서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나 전기기구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음식을 데우거나 만드는 것은 취사실에서만 가능하다. 전기풍로에 올리브유를 넣은 프라이팬을 올린다. 녹말 앙금이 있는 보울에 밀가루, 달걀, 밑간이 된 고기를 넣고 주물러 옷을 입힌다. 기름이 끓기 시작한다. 튀김옷을 입힌 개구리살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노랗게 익기 시작한다. 한번 튀겨낸 것은 간격을 두어 다시 튀긴다. 두 번 튀겨야 연하고 바삭바삭해진다.
 탕수육 소스를 만든다. 오이, 양파, 당근을 아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팬에 야채를 넣고 볶다가 부드러워지면 설탕, 식초와 물을 약간 넣은 후 가열하고, 전분을 넣고 다시 온도를 높여 걸쭉한 상태로 만든다. 튀겨놓은 재료에 소스를 얹는다. 개구리 탕수육이 완성된다. 한 점 집어 맛을 본다. 적당히 달고 알맞게 바삭하고 부드러운 살은 입에 착 감긴다.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다귀를 냄비에 넣고 불을 약하게 조절한다. 은근하게 폭 고아진 개구리 뼈다귀는 훌륭한 곰탕이 된다. 그 국물을 붓고 밥을 지으면 밥알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먹여야 합니다. 김수영 박사의 말에 내가 떠올린 것은 개구리의 뒷다리 살이었다. 어릴 적 나는 콩밭의 개구리를 잡아서 구워 먹는 패거리에 유일하게 끼었던 여자 아이였다. 소나무가지를 꺾어 불을 피우고 구워먹는 개구리는 고소하고 달착지근했다. 개구리를 먹여도 되나요?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에 나도 놀라 몸을 움찔했다. 김수영 박사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좋지요, 재주껏 해 보세요. 김수영 박사의 말은 절벽에서 붙잡을 수 있는 나무 뿌리나 다름없었다.
 개구리를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병원 휴게실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식용개구리를 구한다는 사연을 올리자 팔겠다는 메일이 수십 통 들어왔다. 그 중에서 아이디가 개구리인 메일에 답장을 보냈다. 다음날부터 퀵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은별이는 개구리 탕수육을 잘 먹지 못한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입안이 헐어 있다. 개구리 탕수육의 부드러운 부분만을 골라 입에 넣어주자 은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씹어 넘긴다. 창가에 나란히 누워 있는 나라도 몇 조각을 먹고는 입을 닫는다. 6인실에 누워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눠준다. 보호자들은 한결같이 개구리 요리가 병을 호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점심을 먹은 은별이는 누워서 제 아빠와 통화하고 있다. 남편은 시간마다 잊지 않고 은별이를 찾아 똑같은 말을 한다. 잠은 잘 잤는지, 무얼 먹었는지, 주사는 안 아팠는지, 혈액검사 결과는 어떤지. 전화기를 쥔 은별이의 손가락이 가늘다는 생각을 한다. 손톱이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안타깝고 슬픈 빛이다. 손톱 안의 반달은 새하얗다. 나는 창문턱에 등을 기대고 복도 쪽에 눈길을 둔다.
 병실문이 열린다. 눈썹이 짙고 구레나룻이 있는 한 남자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나는 무심하게 남자를 본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남자가 웃는다. 그때서야 남자가 규한이란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왔을까, 하는 이유까지 알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규한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잠수한다고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규한이 병실을 둘러본다. 누워서 링거를 맞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일일이 챙겨본다. 그들의 알머리에 눈이 닿자 미간을 약간 찡그린다. 은별에게서 눈이 멎는다. 침대 앞에 붙여놓은 이름표를 본다. 규한은 은별이를 본 적은 없지만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규한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다. 규한은 링거와 줄을 만지고 클램프를 돌린다. 손이 떨리고 있다. 약이 빠르게 떨어진다. 은별이가 숨을 가쁘게 쉰다. 규한은 깜짝 놀라며 클램프를 조절해 원래의 상태로 해 놓는다. 은별이 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는다. 맨살이 느껴질 때의 고통을 나는 알고 있다. 규한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을까? 규한은 한동안 손을 떼지 않는다. 아침마다 테이프로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을 찍어냈는데, 어느 날은 감당할 수 없게 돼버렸어. 뭉턱뭉턱 쏟아졌거든. 들쭉날쭉한 머리카락이 흉해 보여서 걱정하던 차에 먼저 그 과정을 먼저 치룬 사람들이 알려주더군. 연락하면 병실까지 와서 머리를 밀어주는 출장 이발사가 있다고. 병실도 사람이 사는 데라서 필요한 것은 다 있어. 규한이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는 듯 한숨을 토해낸다. 원망도 많이 했는데 넌 왜 날 미안하게 만드는 거니? 규한의 말에 힘이 빠져 있다. 그동안 꼼짝도 못했어요. 느닷없이 나라 엄마가 끼어 든다. 수년동안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해온 나라 엄마는 그녀의 말마따나 눈치가 ‘선수’급이다. 지금부터 은별이 보호자는 나예요. 나가서 숨통 좀 틔우고 오세요. 나라 엄마가 규한과 내 가슴을 밀쳐낸다. 나는 뒷걸음질치다가 그대로 병실을 나온다.
 병원 정문 앞의 언덕을 내려오면서 나는 두리번거린다. 오래 전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알고 반대 방향에서 갈아타기 위해 낯선 정류장에 내렸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었다. 규한을 따라 굴다리를 지나 백화점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다. 병실에 갇혀 있을 때는 바깥에 나간다면 꼭 해보겠다고 벼른 것이 많았건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규한의 권유로 백화점에 들러 수영복과 수영모자와 물안경을 산다. 수영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규한은 수영장의 로비에서 유리문을 통해 내가 수영하는 것을 보고 있겠다고 한다. 은별이 또래의 아이들이 유아풀에서 강습을 받고 있다. 은별이도 수영 강습을 받은 적이 있다. 물에 가라앉지 않게 해주는 판을 등에 매고 강습을 받고 와서는 엄마 나 애기 업고 수영했다, 고 말해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작은 발로 물을 찬다. 하얗게 물거품이 인다. 나는 비어 있는 한 레인을 택하여 들어간다. 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손 놓은 지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아주 오래 전의 경험처럼 낯설다. 천장의 조명등이 타일바닥에서 물너울을 만든다. 물 속에 은별이의 맨머리가 보이기도 하고 규한의 구레나룻이 흔들리다가 남편의 안경 쓴 얼굴이 떠 있기도 한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 너무 심하게 운동을 하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나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시작지점에 와서도 멈추지 않고 다시 턴을 해서 수영을 계속한다.
 평상시 나는 남편이 출근하고 은별이가 학교에 가면 가방을 챙겨 수영장으로 갔다. 수 년간 하다보니 마스터 반으로 진급했고 거기서도 언제나 선두였다. 레인의 끝에 가서 뒤돌아보면 내 뒤를 따라 수영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어 뒤를 돌아본다. 레인에는 나 혼자뿐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헤엄쳤을까? 왕복 50미터 거리를 수없이 돈다.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나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그로기 상태가 되고 싶은 것인가. 몸에 힘을 더 빼면서 헤엄치기를 계속한다. 팔과 다리가 둔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몸이 무거워진다.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몸은 물 위에 떠 있기만 할 뿐 한치도 나아가지 않는다. 이러다 가라앉기라도 하면? 살려주세요. 나는 소리친다. 물 밖의 의자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던 강사가 첨버덩 물 속으로 뛰어든다. 내 몸을 낚아채어 물 밖으로 끌어낸다.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심하게 하면 쥐가 나서 죽는 수가 있어요. 나는 바닥에 쓰러진다. 아직 그로기 상태는 아니다. 물 밖에 나오니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거리로 나온다. 아직도 다리가 떨려서 몸이 흔들린다. 규한이 나를 부축하며 말한다. 아까 물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떠 있을 때 가슴이 철렁하더라. 수영장 가자고 한 걸 후회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거리는 끔찍하게 붐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다가 쏟아져 나온 것일까. 어깨에 손을 두르고 걷는 커플, 힙합바지를 입고 대열을 이루며 걷는 젊은이들, 혼자 걷는 여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 중년의 여자와 남자. 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한동안 바라본다.
 시선을 좀더 멀리로 옮기자 병원 건물이 보인다. 성냥갑과 같은 작은 칸들을 올려다본다. 그 안의 한 곳에는 내 딸이 누워 있다. 조금 있으면 저녁식사 시간이구나. 얼른 가서 반찬을 골고루 숟가락에 올려놓아 먹여야 된다는 생각이 반, 병실을 벗어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맘껏 이용하라는 목소리가 그만큼이다.
 병원 위쪽으로 사슴농장의 철망 울타리가 보인다. 예전의 무심함으로 보았다면 도드라진 병원 건물만 알아보았을 뿐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울긋불긋한 단풍 사이로 희끗희끗하거나 혹은 붉은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사슴농장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돼지 껍데기집 앞에 펴놓은 파라솔 밑에 자리를 잡는다. 연탄 화덕이 있는 동그란 테이블에 젊은이들이 꽉 차 있다. 오랜만에 보는 연탄화덕이 정겹다. 규한이 돼지 껍데기와 소주를 주문한다. 돼지 껍데기는 처음 먹는 음식인데도 쫄깃한 게 그런 대로 넘길 만 하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데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픈 거 있지. 할 수 없이 혼자 식당에 가서 아귀아귀 퍼 먹었지. 배가 부르니까 좀 미안해졌어. 그래서 엄마가 건강해야 널 지킬 수 있단다, 하며 합리화를 시켰지. 병이 좀 심해지면 중환자실을 가고 호전되면 일반병실로 돌아오곤 하는 나라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은별이가 먹는 개구리 요리도 입에 맞았으면 좋으련만. 요즘은 그 병도 고칠 수 있는 거지? 규한이 묻는다. 제대혈은 기증하는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골수이식은 항원조직이 맞는 사람이 없어 불가능하고 화학요법을 해야 되는데 정상적으로 치료를 하더라도 수 년이 걸릴 거야. 재발을 하면 더 독한 항암제를 써야 돼. 소줏병이 비어 있다. 이봐요, 병이 새나 봐요. 얼굴이 투실투실한 중년여자가 소주 한 병을 소리나게 놓는다. 훗훗. 아줌마, 그런데 왜 자꾸만 웃음이 나와요?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죠. 좋은 일? 그런가 봐요. 로또라도 당첨됐나 봐요. 입안이 돼지기름으로 미끈거린다. 미끈거려서 자꾸만 입술이 벌어지나 보다. 완전히 어두워져서야 돼지 껍데기집을 나선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상체가 아래로 쏟아져내리고 다리가 허청거리고 자꾸 무릎이 꺾인다. 공연히 머리를 쓸어 내린다. 아직도 머리칼에 축축한 부분이 있다. 여성복을 진열해 놓은 쇼윈도에 내 모습이 비스듬히 비친다. 규한은 내 뒤에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다. 나는 몸을 바로 잡는다. 주먹을 쥐고 쇼윈도의 삐딱한 여자를 향해 힘껏 날린다. 나는 유리창에 폭 머리를 박으며 쓰러진다. 가게 안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재게 뛰어나온다. 미쳤어요? 규한이 여자에게 굽실거리며 사과하고는 나를 일으킨다. 나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뒤로 물러선다. 이마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손으로 휙 쓸어버린다. 여전히 나는 체중이 한쪽 다리에 실린 채 삐딱하게 서 있다. 픽픽. 또 웃음이 나온다.
 은별이는 잠들어 있다. 걱정 마, 저녁 잘 먹고 방금 잠든 거야. 나라 엄마가 뜨개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나와 규한을 보며 말한다. 링거가 혈소판으로 바뀌었다. 혈소판을 다 맞으면 수혈도 받아야 한다. 은별이의 입술이 보라색이다. 아줌마, 술 냄새가 나요. 나라가 소리친다. 그랬구나, 나라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걸 보니 건강해졌는걸. 나라의 신열에 달뜬 붉은 눈과 마주친다. 나는 얼른 외면한다. 나라는 3년 전 신경아세포종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었다. 의사가 계란만한 종양을 떼어다 보여주며 콩팥밑에 있었다더라구. 은별 엄마는 이해할 수 있어? 저 작은 몸에 무슨 암덩어리가 있냐구? 이번에도 집에 갈 수 있을까. 꼭 마지막 같아. 죽지 않기를 바라다가도 결국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구. 정말로 그 일이 내게 일어나면 어쩌지. 나라 엄마는 가끔씩 나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나는 한마디도 거들지 못했다. 나라 엄마도 내게서 위로 받으리란 기대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벽에다 중얼거리듯 몇 마디씩 퍼붓곤 했다. 주사바늘을 꽂은 나라의 팔꿈치 안쪽 피부가 검게 변했다. 귓속의 어디선가 레퀴엠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나라 엄마는 고개를 들지 않고 뜨개질에 열중이다. 나라의 분홍색 양말이 제법 형태를 갖춰간다. 발목만 길게 뜨면 완성될 것이다.
 규한은 은별이 머리를 살짝 만지며 자고 나면 다 나아 있을 거야, 주문처럼 속삭인다. 소아암 병동은 처음이다. 복도를 걸어나오며 규한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다. 누구는 안 그런가. 백혈병이라고 발음하면 더 아파지는 것 같아서 침대 앞에 영어로 쓰인 병명을 자꾸만 읽었다. 루키미아. 확실히 덜 고통스런 것 같아. 나는 규한의 손을 잡는다. 보호자들은 우리말 병명을 놔두고 죄다 루키미아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썼다. 그것은 그들만의 언어였다. 우리말 병명이 주는 고통과 충격을 그들은 그렇게 부르면서 완화시키고 있었다. 은별이가 병실에 입원하고 아직 진단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참 근사한 이름의 병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심장병, 위장병, 피부병이라는 이름이 아니고 루키미아라니……. 김수영 박사가 복도로 불러내어 유감스럽지만 은별이의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병명에서 오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루키미아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아암의 40% 정도가 루키미아 환자였고 병실마다 그 병을 앓는 환자들이 없는 데가 없었다.
 나는 땀에 젖은 규한의 손을 놓지 않는다. 밤이 깊어간다. 규한의 차는 주차장 가장자리의 나무 밑에 있다. 나무 그림자가 가로등의 조명을 차단해 준다. 차 앞에까지 와서도 규한은 들어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 규한의 손을 잡은 채 뒷좌석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만 잊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저지르고 싶어. 아이가 아픈 게 슬프기보다 화가 나. 이 상황이 내게 모멸감을 준다고. 자리에 앉자마자 규한의 무릎 위에 올라타 목을 끌어안는다. 규한의 몸에서는 오래된 습기냄새가 난다. 나는 코를 큼큼거리며 규한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규한의 입술을 열고 혀를 깨문다. 금세 피맛이 혀에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이 기습적인 행동을 멈출 수 없다. 규한이 내 허리를 안는다. 몸 안에 규한의 성기가 가득 들어와 있는데도 자꾸만 헛몸질을 하고 있는 듯하다. 몸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허전하다. 내 몸은 블랙홀처럼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것 같다. 규한은 가끔씩 반응을 해 주며 가학을 견딘다. 피학이, 규한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리라. 너한테서는 바다 냄새가 나. 지느러미가 돋아나 바다로 도망가면 어쩌지. 규한이 다리 사이로 들어오며 하던 말을 떠올린다. 규한, 사정해 줘. 규한이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을 준다.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다. 미안해, 안 돼.
 나는 규한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다. 모질었던 만남이 끝나는구나. 무던히도 상처를 주었는데…….    그 즈음에는 일부러 생살을 찢어내듯 잘라버리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 여겼다. 모진 말로 마음을 상하게 했고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기도 했다. 패악을 부리고 악다구니를 쓰며 다신 안보겠다 선언하고 집으로 가다보면 규한의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규한은 내가 위악을 떤다고 믿었다. 규한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화해의 포즈를 멈추지 않았다. 메시지는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 내 안의 추억이 송두리째 살아나 펄펄 끓어댔다. 만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해후는 죽어야 끝나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랬는데……. 규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랑이라 여겼던 것들을 폄하하거나 훼손하지 말아 줘. 그대로 맘속에 간직해 줘. 규한이 이별을 말하고 있다. 해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물이 흐르듯 만남에도 생명이 있어 제 스스로 명을 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규한이 내 볼을 쓰다듬는다. 규한의 손이 천천히 점자를 읽듯이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손가락은 양 눈썹 사이를 지나 코에 이르고 입술에서 멈췄다가 턱선에서 머무른다. 쇄골에서는 한동안 손가락을 움직인다. 가라. 나는 차문을 열고 나온다.
 규한은 눈길을 주지 않고 차를 출발시킨다. 언덕을 내려가던 자동차의 브레이크등에 불이 들어온다. 가슴 한쪽을 예리한 칼날로 도려내는 느낌이다. 나는 손을 흔들어주며 소리내어 말한다. 규한, 가지 마. 차를 돌려. 내 목소리는 규한에게까지 들리지 않는다. 규한이 손을 들어 보이고 차는 다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간다. 만남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주어진 기간동안 재미있게 보낼 수도 있었으리라. 곁에 있는 동안에는 왜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생의 한 지점을 돌고 있음을 느끼면서 나는 발길을 돌린다.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규한의 체취가 몸에 배어 있다. 은별이 손을 만지며 규한을 느낀다. 깜북 잠이 들었나 보다.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진다. 미란아, 일어나 봐. 남편의 목소리이다. 더 자고 싶어, 일어나고 싶지 않아. 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린다. 중요한 소식이 있어. 테너 호세 카레라스라고 너도 알지? 그도 십여 년 전에 오페라영화 ‘라보엠’ 제작 도중에 쓰러졌는데 은별이와 같은 병으로 진단 받았대. 화학요법과 골수이식수술을 받으며 불치병이라 일컫던 병을 극복했단다. 걱정 마, 은별이는 나을 수 있어. 남편의 말은 인터넷으로 찾아본 정보 수준을 넘지 않는다. 남편은 특별한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일을 희망적으로 말하고 있다. 남편이 침상 밑의 보조 침대를 꺼내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집에 가서 자. 오늘은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여전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이 어둠이 계속되었으면 싶다. 지금의 나는 어두워서 편안하다. 알았어. 남편의 손이 어깨에 닿았다가 거둬진다. 차박차박. 병실을 나가는 남편의 발소리를 듣는다. 현관문을 열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던지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나라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나는 발딱 일어난다. 나라가 숨을 쉬지 않아. 나라 엄마가 소리친다. 나는 나라의 침대로 가서 간호사 호출기를 누른다. 간호사가 들어와 체온계를 꽂고 혈압을 잰다. 뒤이어 들어온 전문의가 나라의 눈꺼풀을 제치고 동공에 플래쉬를 비춰본다. 중환자실로 옮겨. 전문의의 말이 떨어지자 침대수레가 병실로 들어온다. 나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나라의 손을 잡는다. 가짓빛깔의 손이 섬뜩하리만큼 차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내 말은 나를 절망케 한다. 내가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란 뻔한 거짓말뿐이다. 나라의 길쭉한 몸이 침대수레에 실린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나라는 유치원생보다도 못한 몸을 가지고 있다. 나라 엄마도 슬리퍼를 끌며 따라나간다. 나라 엄마가 손을 머리에 올린다. 머리칼을 쥐어뜯고는 손을 내린다. 침대수레 끄는 소리가 멀어져간다.
 나라 엄마가 뜨던 양말이 완성되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주워 창문턱에 놓여 있는 가방 속에 집어넣는다. 가방 안에는 나라의 책과 옷가지, 나라 엄마가 쓴 병상일지 등이 들어 있다. 나라 침대의 형광등을 끈다. 다시 은별이 옆에 눕는다. 가끔씩 다른 침대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고 코고는 소리도 들린다. 은별이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심장 뛰는 울림이 손바닥에 느껴진다.
눈을 뜨고는 여기가 어디지? 생각하며 잠시 누워 있다. 흰색 천장이 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서 구토소리가 들린다. 입원실이란 게 떠오른다.
 은별이는 허리를 꺾고 앉아 휴대폰 게임에 열중이다. 푸시푸시. 공을 밀 때마다 소리가 난다. 작은 통로를 통해 집 안으로 하나씩 공을 밀어 넣는 게임이다. 서랍 위에 남편이 인터넷에서 뽑아다 놓은 프린트 용지가 있다. 어젯밤에 말했던 호세 카레라스에 관한 내용이다. 남편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몽상가였고 그 몽상을 내게도 전이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나는 어떤 거짓 희망도 가지지 않으려 한다. 10만 명 당 3명이 걸리는 병에 걸린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내 생의 지리멸렬과 절망과 암담함을 인정하고 싶다. 종이를 서랍에 집어넣는다.
 회진이 끝나고 나서 간호사가 들어와 나라가 나간 자리의 시트를 벗겨내고 새하얀 홑청으로 바꿔 씌운다. 곧 새 환자가 들어온다는 신호이다.
개구리 퀵서비스가 문을 빼꼼이 열고 들어온다. 나는 얼른 상자를 받아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물에는 역시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구리가 들어 있다. 개구리는 그물에 발을 걸치고 매달려서 눈을 휘둥거린다. 오늘의 요리는 담백한 개구리 맑은국이다. 나는 용도에 맞게 손질한 개구리 살을 보울에 담아서 은별이 자리로 가져온다. 취사실에 가기 전에 은별이 소변을 뉘어줄 참이다. 화장실문이 열려 있다. 개구리 비린내가 스며나온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토할 거 같아요. 병실에서 이런 냄새 피워도 돼요?
 생머리를 정수리에서 묶은 여자가 아이를 등에 업고 병실로 들어서며 새된소리를 지른다. 아이의 팔이 축 늘어져 흔들거린다. 병실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생머리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대체로 보호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은 색깔의 불행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게 이유인 듯하다. 이곳에서는 불행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배타적이 된다. 생머리의 아이는 아직 진단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설마 우리 아이가? 하는 반신반의는 언제나 현실로 드러났다. 오진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호자들은 생머리가 머지않아 개구리 요리법을 배워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 라고 오만을 부리고 있는 것은 생머리뿐이다. 생머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의 확신을 체념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생머리는 나라가 나간 침대에 아이를 눕힌다. 침대 앞의 이름표를 본다. 8살. 민현우. 주치의 김수영. 소아암 병동에 입원하는 김수영 박사의 환자들은 두 가지 병명을 갖는다. 루키미아 혹은 재생불량성 빈혈. 둘 다 쉽지 않은 병이다.
 취사실 전자레인지 안에는 벌써 수많은 음식들이 데워지고 있다. 나는 준비해 온 냄비를 전기풍로에 올려놓는다. 개구리 맑은국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개구리살과 마늘 양파 대파 등의 양념을 넣고 익히다가 마지막 시점에서 미나리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다.
 은별이는 입맛을 약간 회복한 모양이다. 국물에 말아서 개구리 고기를 얹어주면 잘 받아먹는다. 점심 식사를 끝내자 간호사가 와서 링거바늘을 뽑는다. 수액제는 저녁시간부터 다시 맞게 될 것이다. 주사바늘만 빼도 돌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나는 은별이 머리에 노란색 손수건으로 두건을 만들어 두르고 산책준비를 한다. 병실 밖을 나갈 때 은별이는 머리에 신경을 쓴다. 맨머리로 나가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 은별이를 휠체어에 앉히고 중환자실 쪽으로 천천히 밀고 간다. 중환자실 앞 보호자대기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나라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중환자실 문 옆에 붙여진 환자 명단에서 나라의 이름을 찾는다. 없다. 문이 열리고 흰시트를 가슴에 안은 간호사가 나온다. 어젯밤에 온 신나라 환자 이름이 안 보이네요. 간호사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5초 정도가 흐른다. 숨이 멎어버린 시간. 간호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병원 밖으로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대학교 캠퍼스 쪽으로 가려는데 경비가 안 된다고 손짓을 한다. 주차장 근처의 공간에서 휠체어를 밀며 왔던 길을 다시 반복해서 걷는다. 은별이의 얼굴색이 한결 나아졌다. 어젯밤 수혈 받은 영향으로 입술색도 붉어졌다. 볼 주위도 불그레 물든 게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다. 모과나무 밑 벤치에 앉아 바닥을 보고 있는 사람의 옷이 눈에 익다. 인디언 핑크빛의 카디건. 내가 규한에게 생일선물로 사 준 옷이다.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본다. 고개를 든 규한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둘 다 모르는 사람 대하듯 알은 체를 하지 않는다. 둘 중 누구라도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지. 어리석었어. 그 후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진정한 이별임을 그때는 몰랐던 거지. 일년 전 끝내 헤어짐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온 규한이 한 말이었다. 이제 그런 말로 돌이켜질 운명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별을 경험한 나라 엄마는 이 시간을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보내고 있을까. 규한이 일어나 병원 정문 쪽으로 걸어간다. 규한의 어깨가 낯설다. 저 남자가 어제 나와 몸을 나눴던 사람이던가.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벌써 너와 나 사이에 이만큼의 거리가 생겨버렸구나. 나는 손을 뻗어 거리를 가늠해 본다. 대충 백 미터는 되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더 먼 정신적인 거리가 느껴진다. 너는 그늘을 드리워주는 나무 같아. 내가 필요하면 언제나 와서 쉴 수 있는 곳이거든. 규한은 내가 더 이상 나무가 아님을 확인했을까. 규한이 앉았던 벤치에 앉는다. 온기가 남아 있다. 이곳은 내가 창가에 기대어 있거나 창 밖을 내다보았을 때 보여지기 좋은 곳이다. 규한은 좋은 자리를 찾아냈구나. 은별이 옆자리의 창가에 생머리가 바깥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해 있다. 가장 두려울 때는 진단을 받는 순간이 아니라 진단을 기다리는 시간이란 걸 생머리도 깨닫게 되리라. 나는 사위를 휘둘러본다. 규한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규한, 보고 싶으면 다녀가라.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오지 않겠지.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언제까지나 계속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규한에게 결별은 갑작스러웠을 것이다. 어쩜 규한은 이별을 확인하기 위해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휠체어를 밀면서 주차장에 끝에 도착한다. 주차장이 끝나는 지점부터 산자락이 이어져 있다. 휠체어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은별이를 등에 업는다. 새벽과는 달리 산책로에는 간간이 환자들이 눈에 띈다. 나무 옹이에 링거를 걸고 돗자리에 누워 있는 환자도 있다. 억새가 산책길로 꽃술을 떨구고 비스듬히 서 있다. 은별이는 무겁지 않다. 여덟 살. 정상적인 아이라면 업지 못했을 것이다.
 사슴농장 주위에도 몇몇의 사람들이 앉아서 사슴을 구경하고 있다. 꽃사슴들도 우리에서 사람들을 쳐다본다. 꽃사슴의 뿔은 왜소하고 검은색이다. 몸에 흰 반점이 뚜렷하고 등줄기로부터 검은 털이 꼬리까지 연결되어 있다. 숫사슴 한 마리가 끼우, 예의 그 소리를 지르며 높이 뛰었다가 제자리에 선다. 저 놈이야, 울타리를 뛰쳐나갔다가 병원 주차장에서 올가미에 잡혀왔다던 녀석이. 차 몇 대를 찌그려뜨렸다더군. 에구, 미련스럽긴. 나갔으면 넓은 산으로 갔어야지 뭣하러 병원 주차장엔 갔을꼬. 그런데, 저 높은 울타리를 어떻게 뛰어넘었을까? 구경꾼들이 손가락으로 숫사슴을 가리키며 수군댄다. 숫사슴의 가슴털에 짙은 붉은색의 피가 묻어 있고 다리를 약간 절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어제 쇼윈도에 부딪친 이마의 상처를 짚어본다. 상처는 꾸들꾸들 말라가고 있다. 숫사슴의 눈과 마주친다. 나는 눈을 맞추며 오래 바라본다. 꼭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눈빛을 주고받는 느낌이다. 사슴농장은 사방으로 울타리 공사가 진행중이다. 바닥을 더 넓게 깔고 철망 우리를 넓히고 있다.
 은별이가 퇴원하는 날이다. 기쁘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첫 입원의 결과가 좋으면 다 나은 줄 알고 기분 좋게 퇴원했다. 항암제는 처음에는 약발이 잘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 정도는 재발했고 재발이 잦아질수록 항암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 또한 여러번 확인했다. 재발하지 않고 치료한다고 해도 치료 기간이 5년 이상이었고 그 후에도 재발을 우려해 6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회진을 마친 김수영 박사가 악수를 청한다. 은별이는 관해가 와서 다행입니다. 암세포를 구십퍼센트 줄였지만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에요. 나머지 십퍼센트가 더 무섭다는 걸 잊지마세요. 약은 하루도 빠지지 말고 먹여야 하구요. 매주 수요일은 외래로 오세요.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임을 명심하세요. 병원을 내 집이라 생각하는 게 좋아요. 남편이 약국에 가서 약을 타 온다. 약 봉투가 양손에 들려 있다.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다. 다행이야. 이젠 다 괜찮아질 거야. 짐을 싸면서 남편은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나는 은별이 환자복을 벗기고 평상복으로 갈아 입힌다. 입원할 때 입고 왔던 여름옷은 남편이 집에 갖다 놓았고 다시 가져온 긴 팔 옷이다. 물론 괜찮을 거야. 아무렴, 그래야지. 마음속으로 말할 때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나라의 검은 눈동자가 눈에 어른거린다. 나는 은별이의 손을 만진다. 주사바늘이 꽂혔던 주위에 푸른 멍이 들어 있다. 이건 버릴까? 남편이 보온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개구리 곰탕이다. 아냐, 그대로 가지고 가. 남편이 보온병의 뚜껑을 닫는다.
나라 엄마는 병실에 들르지 않는다. 나는 보관했던 나라 엄마의 가방을 원래 있던 창문턱에 갖다놓는다. 가방을 열어본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나라의 흔적들을 손으로 만진다. 지퍼를 닫는데 곰팡이 냄새가 훅 끼친다.
 병원 건물 밖에서 차가 주차장에서 나오기를 기다린다. 가을 햇살이 맑으면서 강하다. 얼굴에 타닥타닥 튀는 느낌이다. 은별이가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이 눈부시다. 온전한 기분으로 하늘을 보며 살아가기는 이미 틀렸다. 날마다 개구리 요리를 만드는 엄마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누가 알아줄 것인가?
 개구리 퀵서비스가 헐레벌떡 뛰어와 내 앞에 선다. 병실에 갔더니 막 퇴원했다고 하잖아요. 퇴원의 기쁨에 빠져 하마터면 개구리를 잊을 뻔했다. 나는 상자를 받아서 뒷좌석 바닥에 놓는다. 내일부터는 집으로 배달해 주세요. 나는 집 주소를 적어 퀵서비스에게 건넨다.
 차에 오른다. 나는 뒷좌석에서 앉아서 은별이 머리를 내 무릎에 살짝 누인다. 입원하기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머리칼은 곧 나올 것이고 외출하듯이 일주일에 한번 병원에 다녀가면 되는 거야. 매일 밥 먹이듯 약을 챙기면 되는 거고. 아무일도 없었던 체하며 예전처럼 살아가는 거야. 남편이 차를 출발시킨다. 남편은 자신의 삶에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균열을 애써 인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은 퇴근하면서 잠깐 들렀을 뿐이야. 병원비를 벌어야 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아, 미안해. 그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하지만 당신은 나라 엄마의 뒷모습을 못 봤잖아? 골수 검사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비명을 당신이 들어봤어? 척수주사를 맞기 위해 공처럼 몸을 말고서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냐구?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남겨져서 방사선을 쪼이는 아이들의 심경을 상상이나 해 봤냐구? 쏘아붙이고 싶은 말들이 목까지 올라와서 와글와글 끓어댄다.
 상자 속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개구리들이 상자의 벽을 긁어대는지 상자가 꿈틀거린다. 가끔씩 찍찍 소리도 들린다. 개굴개굴 울어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내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소리이다. 나는 상자를 여민 테이프를 벗기고 뚜껑을 열어놓는다. 그물 속에서 개구리들이 높이 뛰기를 한다. 아, 비린내. 속이 메슥거린다. 은별이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린다. 나는 차창을 내린다. 야, 이놈들아 웬만큼 설쳐대라. 남편이 뒷좌석 밑을 돌아보며 한마디한다. 개구리들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꿈틀거린다.
 집을 내 놨어. 부동산중개소에서 자주 찾아올 거야.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자. 은별이 머리가 자라면 전학한 학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남편이 룸미러를 통해 내게 동의를 구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창밖의 세상은 평온하다. 우리 차 앞의 많은 차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달린다. 앗, 따가워. 은별이가 손으로 얼굴을 친다. 은별이 얼굴에 개구리가 앉아 있다. 내 손이 반사적으로 잡아채는 순간, 상자에서 후두둑, 소리가 나더니 개구리가 일제히 튀어나온다. 남편의 목덜미에, 차창에, 운전대에도 개구리가 할딱거리며 앉아 있다. 차안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녀석도 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차창을 내린다. 두세마리의 개구리가 후다닥 뛰쳐나간다. 물큰, 바퀴에 깔리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남편이 차를 갓길에 세운다. 남편은 차 안에 남아 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잡아서 그물에 넣고 매듭을 꼭꼭 묶는다. 그물 사이로 개구리들이 머리를 들이민다. 남편은 그물을 들어 상자에 집어넣는다. 상자에서는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
 차는 사거리를 지난다. 산등성이의 사슴농장이 훤히 보인다. 사슴 울타리의 철망을 산 중턱까지 올려다 설치해서 우리가 훨씬 넓어졌다. 우리 안에서 사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바닥은 여전히 희끄무레한 시멘트 콘크리트이거나 헐벗은 붉은흙이다. 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    사슴농장이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사슴들이 갇혀 있는 공간이 확연히 드러난다. 사슴들의 활동 공간이 조금 넓어졌을 뿐 갇힌 곳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심사평-한승원 소설가

“냉정하게 진술하는 태도 믿음직스러워”

응모작들 대부분이 다 이 땅의 역사, 사회, 외국인 노동자, 북한 핵, 이라크 전쟁, 가라앉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관심이 자기 주변의 삶만으로 좁아져 있다.
소설은 한 개의 커다란 비유 덩어리이자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진실된 삶이지 않습니까’하고 독자에게 질문하기이며, 서사를 통한 문학형태이므로 일단 재미가 있어야하고 감동적이어야 한다.
삶의 진실을 전달하는 나는 서사를 전달하는 그릇인 문장력 및 구성력과 형상화하는 능력과 재미를 기준으로 했다.
예선을 통과한 15편 중 ‘폭설’과 ‘손’, ‘배추 흰나비’ ‘눈’ ‘스웨덴이 보이는 해변’ ‘개구리 요리를 하는 시간’ 등 7편을 깊이있게 읽었다.
‘손’ ‘폭설’ ‘바이오코드’는 문장의 밀도와 짜임새가 허술하다는 이유로 밀려났으며 ‘스웨덴이 보이는 해변’은 세련된 솜씨이기는 한데 차분하지 못하고 가볍다는 점에서 제외시켰다.
‘눈’은 밀도있는 문장과 형상화하는 힘이 돋보였지만 지리멸렬하고, ‘배추 흰나비’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사랑한 여자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작위적인 것이 흠이었다.
‘개구리 요리를 하는 시간’은 냉정하게 차근차근 진술하는 태도가 믿음직스럽고 주인공의 생명력이 눈물겨웠다. 아들의 생명을 위해 개구리의 생명을 어찌할 수 없이 죽여 요리하는 사람의 실존을 나는 진저리치며 칭찬해줄 수밖에 없다.
당선자에게 축하하고 건필을 빈다.


당선소감

 

“글쓰기에 대한 욕망 폭발하듯 터져 나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와 있다. 한때 유명한 디제이였던 사람이 운영하는 음악공간이다. 들어서는 순간 인테리어와 음악이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에 익숙해졌을 즈음 노트북을 켠다.
청년이 주방에서 손수 담갔다는 대추차를 가져다 준다. 맛이 깊다.
디제이는 검은 티셔츠와 재킷 차림의 평범한 모습이다. 그는 열 명 정도의 젊은 여자들과 같은 테이블에 모여서 자신의 저서에 사인을 해주고 담소를 즐긴다. 그는 소장하고 있는 앨범이 많았고 언제든 보고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이런 장소를 마련했다. 여자들의 얼굴에 한결같은 웃음이 배어 있다. 오래 전부터 라디오에서 익숙해져 있는 그의 목소리는 뜬끔없이 향수를 자극한다. 가슴속의 한 곳에서 난데없이 통증이 일어난다. 젊은 시절부터 부채감으로 남아 있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다. 아무런 근거나 대책이 없는 생각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놀림이 빨라진다.
그가 내게 와서 인사를 한다. 나는 낯가림 때문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이 어이없음이라니.
한참동안 노트북에 눈을 두고 있으려니 무릎이 시리다.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어서 난방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의자 손잡이에는 친절하게도 작은 담요가 마련돼 있다. 무릎을 덮으니 금세 따뜻한 기운이 스며든다. 내가 쓰는 소설이 무릎덮개라도 되었으면 싶다. 넓은 공간을 흐르고 있는 음악이나 끗발있는 디제이가 주는 파장만은 못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무릎덮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