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이가람 옮김|이매진
366쪽|1만7000원
조직에서 관리받는 감정과 인간 본연의 감정 구별해야
한국의 백화점이 북미나 유럽의 백화점과 가장 다른 점은 종업원들의 인사성(人事性)이다. 특히 문을 열 때 입구에 두 줄로 서서 몸이 반으로 접히도록 허리를 숙이고 홀이 떠나가라 "안녕하십니까" 목청을 높이는 광경은 서구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여기에는 목이나 허리를 굽히는 동양과 꼿꼿이 서서 악수를 나누는 서양의 예법(禮法) 차이를 넘어서는 과도함이 있다. 그렇게 '크게' 인사를 받는다고 손님들이 크게 감동받을까? 그런 부자연스런 인사를 하루 종일 감내해야 하는 종업원들에게 후유증은 없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의 사회학과 교수인 혹실드(Hochschild)는 '친절하게 대하기'라는 사회적 전제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사회적 전제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사생활이나 직업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데 따르는 손실과 이익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사람들이 개인의 기분을 다스려 얼굴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배우가 연기하듯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고 판매되기 때문에 교환가치를 갖는다. 또한 감정노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한다.
비행기 여승무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스튜어디스의 미소는 화장·유니폼·기내에 흐르는 음악과 편안한 느낌을 주려는 은은한 색상의 비행기 장식, 기내에서 제공되는 음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승객들의 기분을 좌우하게 된다. 당연히 스튜어디스에게 미소는 일의 한 부분이다. 남들이 볼 때 미소를 짓는 일이 힘들다는 게 티가 나면, 그는 업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피로감이나 짜증을 감추는 것도 스튜어디스 업무의 일부다.
이런 '감정노동'은 현대사회에 일반화된 현상이다. 오늘날 미국 노동자 중 3분의 1가량이 꽤 높은 수준의 감정노동이 필요한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영업사원·비서·여행가이드·호텔종사원·사회복지사·장의사·은행원·목사·간호사·경찰·변호사….
저자는 델타 항공의 임원과 승무원, 각 분야 노동조합 관계자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뒤 "사적 차원의 감정관리가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임금을 얻기 위한 감정노동으로 변형될 때 인간성의 쇠진(衰盡)이 일어난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쇠진·스트레스·신체적 쇠약 등은 감정노동 사회에서 살아가는 감정노동자의 특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시장과 기업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이 매우 미묘한 문제인 만큼, 감정노동자와 그 결과물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감정 그 자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기업과 조직의 원리에 따라 관리되고 상품화된 감정과 인간 본연의 감정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책의 원제목이 '관리된 마음: 인간 감정의 상품화(The Managed Heart: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인 이유이기도 하다.
또 등 뒤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관계없이 자기 고유의 소유물로 남게 될 내면의 보석인 '참된 자아(自我)'에 관한 생각을 채워가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이 '참된 자아'를 더욱 내면화하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남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감정을 지닌 기계로 살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나면, 우리는 '진짜'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남은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
1983년 미국에서 초판이 나온 뒤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으로,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동원하고 개념적 논의가 섞여 있어 손쉽게 읽히진 않는다. 책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 한 가지. 델타항공에서 스튜어디스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화가 치미는 상황에 처하면 숨을 깊게 들이쉬고 혼잣말로 '집에 가면 안 볼 인간이다'라고 되뇌면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테스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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