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껏 살아라 !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들녘
296쪽, 1만2000원
암으로 세상을 떠날 날만 기다리는 아버지가 아들(딸과 아내는 책 말미에 등장한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착한 소리만 한다지만 이 책은 ‘착한 책’ 이상이다.
향수가 있다. 그 아버지는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 피렌체 변두리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부자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 보고 놀라고, 어머니가 혼수로 가져온 침대보를 맡기느라 주변 눈치를 보며 전당포에 출입하던 어린 시절을 그렸다. 동네사람들은 서로 알기에 빵값이 없으면 가게에 외상을 달아놓았다가 월말에 갚던 그 시절. “수치심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는 그가 꿈을 키우고 이루는 이야기가 향수를 자아낸다.
부디 이 대목서 구질구질하다고 책을 덮지 말기를. 역사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역사가 있다. 독일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아시아 특파원이 되어 겪은 20세기 중반의 베트남 전쟁이며 캄보디아 내전, 문화혁명 후의 중국 체험담이 담겼다. 미국 CIA요원으로 오인받아 크메르 루주의 총구 앞에 서기도 하고 서구 언론 최초의 중국특파원으로 지금의 중국과는 사뭇 다른 ‘죽의 장막’ 뒷켠 이야기가 그것이다. 중국의 실상을 가까이 보며 마오쩌둥의 혁명이 변질됐다는 것, 인류문제의 해결책으로 공산주의 사상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절감하는 과정을 담담히 풀어냈다. 혁명은 어린아이 같아서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추하고 야비한 어른으로 변한다고 한다.
2004년 3월 이탈리아의 오르사냐 마을에서 30대 중반인 아들 폴코(왼쪽)에게 유언 삼아 자신의 인생역정과 깨달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티찌아노 테르짜니. [들녘 제공] | |
내용이 다양한 만큼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얻을 게 많다. 순수한 열망과 노력으로 가난의 멍에를 벗고 미국 유학까지 나서는 청춘, 그러고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뜨거운 열정으로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 순수는 젊은이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그런가 하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뭔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확실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어. 확실성은 안락함을 주는 대신 우리를 종속시키니까”란 지은이의 말을 들으며 얼굴을 붉히지 않을 기성세대가 얼마나 될까.
이 책은 그래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격동의 세월을 몸으로 앓아온 많은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이자 자신 삶을 돌아보는 진솔한 말들이다.
“나는 아버지란 ‘추억을 심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여러 경험을 함께하면서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관한 기억을 많이 남겨 주고 싶었어.”
자식을 둔 부모면 평범하든 비범하든, 돈이 많든 적든 모두 같지 않을까. 그래선지 독일과 이탈리아에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다는데 수긍이 간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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