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의 기원 / 양현근
한 눈을 팔다 또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쳤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됐는데 이 모양이라니
아픈 무릎을 쓰다듬는데
몇 번을 나를 겨누고도 아무 흔적이 없는 모서리
내 불쌍한 무릎만 또 며칠 푸르게 익어갈 것이다
그러게 조심 좀 하랬잖아요
마누라가 내미는 또 다른 모서리
저 모서리도 평생 닳을 줄 모르지
툭 내밀고 돌아서는 모서리를 아내는 금방 잊겠지만
나는 푸른 멍이 한 겹 더 얹히는데
그러고 보니, 온통 모서리 천지더군
따지고 보면 모서리 아닌 게 어디 있겠어
사는 게 모서리에 긁히다가 결국
모서리에 스며드는 일이지
멀리 둥근 달이 어느 빌딩의 모서리에
쿡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본래 모서리는 죄가 없을 터이다
어설픈 달도 어설픈 나도
모서리에 너무 익숙했던 탓이다
푸르스름한 보름달이 어둠을 매만지고 있다
게재지: 열린시학
<시향> 현대시펼쳐보기. 2009.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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