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에는, / 백상웅
우리 가족의 밥상은 반찬이 적을 때도
첩첩산중.
낫을 휘두르고 괭이질을 해야 건널 수 있었지.
밥상의 가운데는 모닥불을 피워 냄비를 걸었던 흔적.
우리가 둘러앉아 가죽을 벗기고 뼈를 골라내던,
짐승 울음소리를 듣고 벌벌 떨며 오줌을 지리던 자리.
젓가락으로 바위를 골라내고.
산의 능선도 한 숟갈 퍼내고.
밥상이 가벼워진 것은 우리가 벌목을 했기 때문이야.
짐승의 다리를 베면
꽃잎은 폭발하고.
꽃이 한 날에 죽으면
뿌리는 밥상 모서리를 깎아내고.
우리가 노동을 하는 것은 밥상에서 겨울을 나기 위한 것이라서.
정강이뼈를 다듬어 수렵을 떠난 아빠.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눈이 맞은 동생.
아빠와 동생 사이에서 밥상을 잃은 엄마.
나는 엎어진 밥그릇 같은 빈山만 득득 긁고 있고.
나는 붓을 들어 밥상 위에 벽화를 그리지.
얼어붙은 동치미 국물을 깨트리는 족족 미끄러지고.
내가 밥솥과 밥상을 지키는 것은 장남의 노릇이랄까.
꼬리와 근육을 키운 밥상도 마침내 집을 뛰쳐나가면.
<문장웹진>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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