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입적] `절판된다니 사놓자` 품귀현상 [연합]
출판사들 `유언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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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양동에 사는 주부 이모(58)씨는 12일 저녁 시내 대형 서점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법정스님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가 있는지 물었지만 "당분간 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씨는 "뉴스에서 법정스님이 더 이상 책을 내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들었기에 이번이 스님 책을 살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어 책을 구해보려 했다"며 "이제 스님의 책들을 읽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이 11일 입적하기 전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절판을 우려한 독자들이 스님의 저서들을 앞다퉈 사들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법정스님 입적 후 저서 판매량이 하루 만에 5배 늘어났으며, 인터파크도서에서도 '무소유', '일기일회', '아름다운 마무리' 등 스님의 산문집과 법문집이 판매량 1∼3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저서들의 판매량이 급증했으나 법정스님의 책들은 서점가에서 공급량이 동날 정도로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에서 전에 없는 현상이다.
대표작 '무소유'와 '홀로 사는 즐거움', '말과 침묵', '텅빈 충만' 등은 오프라인 서점뿐 아니라 예스24, 알라딘, 인터넷교보문고 등 대부분 인터넷 서점들에서도 '품절', '절판', '판매중지'로 안내되고 주문이 불가능하다.
출판계와 서점가는 "지금 아니면 못 구한다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책들이 더는 출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절판되기 전에 사놓자"는 독자가 몰리고, 독자가 몰리자 품절되는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
인터파크도서 오경연 북마스터는 "법정스님의 유지로 현재 더 이상 관련도서의 출간 예정이 불투명함에 따라 갑자기 도서 주문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출판사로부터 소량씩 도서가 확보되는 대로 한정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책이야 찾는 독자들은 많고 재고가 떨어졌다면, 새로 찍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법정스님의 책을 출간해온 출판사들이 당장 책을 새로 찍겠다고 팔을 걷어붙일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출판사들은 "모든 출판물을 앞으로 더는 출간하지 말라"는 유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앞으로 책을 더 찍어 독자들에게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뜻을 널리 알려야 할지, 유지로 알려진 뜻대로 절판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일기일회', '아름다운 마무리' 등 근작들을 낸 출판사 문학의숲 고세규 대표는 "스님을 지난 4일 찾아뵈었을 때 새로 나온 '내가 사랑한 책들'을 받아보시고 반기셨다"며 "맺고 끝는 게 정확한 분이라 절판을 바라셨다면 출판사에 말씀했을 텐데 말씀이 잘못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무소유'를 낸 범우사의 김영석 실장은 "스님의 좋은 뜻이 더 많이 읽혀야 할 텐데 싶고, 절판되면 오히려 무단 복제판이 판칠 수도 있어 걱정"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샘터의 김성구 대표는 "법정스님이 이끄신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의 뜻을 들어보고 절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탁월한 문장력과 무소유 철학, 서정적이고 소탈한 내용이 담긴 책들로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작가'이자 '스타 스님'이었다.
특히, 1976년 첫 출간된 '무소유'는 330만 부 넘게 팔려나간 인기 도서이자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검소하며 단순한 삶을 권하는 내용으로 스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대표작이다.
출판사들은 법정스님이 책 인세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지 않았나 추측할 뿐, 스님이 직접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을 겉으로 내비친 적은 없다고 전했다.
범우사 김영석 실장은 "스님이 인세로 좋은 일을 하셨고 맑고향기롭게 일에 쓰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일에 쓰신다는 건지 말씀하신 적은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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