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 이근화(1976∼ )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피를 흘리고
귀여워지려고 해
최대한 귀엽고
무능력해지려고 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달려보려고 해
연통처럼 굴뚝처럼
늘어나는 감정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울어보려고 해
우리는 젖은 얼굴을
찰싹 때리며
강해지려고 해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도 않는 계단에 퍼질러 앉은 이 모습은 생존일까 실존일까. 실존 자체가 생존이라면 그 어쩔 수 없음을 엔진으로 매달고 살라는 것. 이 역설은 주장 이상으로 묘하게도 ‘우리’를 한자리에 비끄러맨다. 우리는 ‘우리’라는 어색한 굴레로 이미 퇴화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슬픈 동류니까. 그 ‘우리’가 좋아서 이 세계에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살아남으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뻔뻔함이나 무능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운으로 ‘우리’의 불안한 유대는 과연 유지가 될까.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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