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 아이 / 이은환
한 때 내가 기르던 고양이 집을 나갔다
그는 나를 잊었다
우연히 젖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사시의 뭉툭한 표정
슬픔은 그런 거다, 어쩐지 핀트가 맞지 않는
그 때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게 있다
잠시는 알아 보는 듯 멈칫하는,
눈빛은 어느 시점에서는 마치 사실 같다
그 순간에 서둘러 거두는 후미 같은 게 있다
그가 남기는 발자국이 비리다, 살육이 있은 후처럼
사랑은 낭자하다
아마도 그는 사랑을 했을 것이다
한 끼의 사랑이란 종종 발톱이나 이빨 사이에 딸려 나온다
상냥하게 잘 조리된 나를 드세요,
시간이 다른 시간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덜컹 다리 한 짝, 덜컹 팔 한 짝 깨물어 먹히며
그립다니,
아무 때나 농후한 노래가 혀끝을 깨문다
새빨갛게 터지는 사랑
고요한 밀랍 같은,
두 눈 사이
조리개 닫히고 열리는 사이
새파란 혼불 펄펄 끓는 저녁의 안광 사이
거기 무엇이 있는지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거짓말일수록 달콤한지, 정말 그런지
사뿐, 공복을 핥으며 지나가는 빛나는 걸객의 눈
한 쪽 눈은 저 건너 다른 물빛을 보고 있다
*오드 아이(Odd eye):양쪽 눈의 색깔이 달라서 생기는 특이한 현상.
시집 <한 권의 책> 2010.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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