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두레박 / 정겸

시인 최주식 2010. 5. 15. 20:47

두레박 / 정겸

 

낙안읍성 민속마을 낮은 우물둥치에

물기를 잃어버린 두레박이

땡볕을 끌어안고 누워있다

동행자도 없는 동굴 속을

하루에도 몇 십번씩 수직의 선을 그으며

외롭게 살아왔지만

그는 많은 비밀을 가졌다

여인들은 하루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귓가에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놓고 가버렸다

머리와 꼬리가 잘려나간 소문들

몸통과 얼굴이 잘려나간 염문들

모두가 몸체가 없는 파편들 이었다

찌그러들고 흔들리는 삶속에서도

뇌관처럼 지녀야하는 고통스런 기억들을

한 번도 토해 낸 적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십번씩

입안을 헹구어 내는 정갈함은

오히려 그가 가지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시집<공무원> 2010. 현대시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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