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그 저녁 / 김형미

시인 최주식 2010. 5. 15. 20:54

그 저녁 / 김형미

 

자귀나무 연자꽃 붉어가는 정육점

저녁마다 그 앞을 지나간다

갈고리에 걸린 시뻘건 갈비를 보면

오래 전 사내를 품었던 그때처럼

나도 모르게 내 옆구리를 더듬게 된다

그러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몸속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갈비뼈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잊혀진 것들을 부르게 한다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는 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사람이 떠나도 

도무지 인가 주위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저 몸서리쳐지는 연자꽃 향기

목을 비틀어 죽여버리고 싶은 저녁

선연한 달빛이 터럭을 날리며

정육점 안으로 들어선다

옛사랑이 숨어 있기 싫어하는, 그 저녁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2010.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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