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나무 / 김형미
그 집 마당에 두고 온
벽오동나무의 혼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
초여름 이른 안개에 젖은 늙은 벽오동
한 평도 안 되는 어께에 기대어
한 삼 년쯤 묵어갔음 해
산 설고 물 설은 능가산 자락만큼 큰 잎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눈멀었음 해
흙벽집 옹이 많은 기둥처럼
깊이 골몰해 있는 등뼈를 일으켜 세워
낡은 가야금 타는 소리를 듣곤 해
이따금 집을 스치는 바람
꼭 현을 짚는 그 소리인 것만 같아
열띤 이마에 물수건 올려주던 가늘한 손목처럼
굵은 맥박이 뛰는 농현 속으로
가는 길이 절 속같이 다사로웠으면 해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2010.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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