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저녁 / 김형미
자귀나무 연자꽃 붉어가는 정육점
저녁마다 그 앞을 지나간다
갈고리에 걸린 시뻘건 갈비를 보면
오래 전 사내를 품었던 그때처럼
나도 모르게 내 옆구리를 더듬게 된다
그러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몸속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갈비뼈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잊혀진 것들을 부르게 한다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는 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사람이 떠나도
도무지 인가 주위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저 몸서리쳐지는 연자꽃 향기
목을 비틀어 죽여버리고 싶은 저녁
선연한 달빛이 터럭을 날리며
정육점 안으로 들어선다
옛사랑이 숨어 있기 싫어하는, 그 저녁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2010.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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