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프랑스의 '문학 한류'를 보고

시인 최주식 2010. 6. 6. 16:15
박해현 논설위원

[동서남북] 프랑스의 '문학 한류'를 보고

 

칸 국제영화제에서 일군 한국 영화의 파급력이 프랑스에서 '문학 한류(韓流)'를 낳고 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칸 영화제 60주년 집행위원회 청탁으로 쓴 책 '발라시네'를 통해 "오늘날 한국 영화의 힘은 전쟁과 분단 이후 사회 변화를 형상화한 문학의 활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일간지 르 몽드는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가 인터넷에 승부를 걸다'라며 작가 황석영을 1개 면에 걸쳐 다뤘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가 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블로그에 연재해 200만 명이 읽고 댓글을 단 것은 인터넷 강국인 한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이미지가 예술 영화에 이어 인터넷 소설 연재에서 첨단을 달리는 문학의 나라로 부각됐다.

지금 파리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한불 문학 포럼'이 열리고 있다. 작가 황석영·이승우·신경숙·김영하가 현지 작가·출판인·언론인 등과 함께 한국 문학의 높아진 위상을 놓고 지난 2일부터 대화를 나눴다. 최근 5년간 해외에서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집 331권 중 영어가 69권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어가 61권으로 그 뒤를 이었다. 프랑스에서 문학 한류가 활발해진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한국 소설을 꾸준히 낸 쥘마 출판사의 세르주 사프랑 주간은 이번 포럼에서 "한국 영화와 2002년 월드컵 영향으로 한국 소설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판매량도 매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말 출간된 황석영의 소설 '심청' 프랑스어판은 르 몽드 등 주요 언론의 호평(好評)에 힘입어 현재 7000부나 팔려 프랑스에 소개된 한국 소설 중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이미 이승우의 소설 '생의 이면'은 몇 해 전 페미나상 외국소설 부문 최종심까지 올랐고, 신경숙의 '외딴 방'은 지난해 신설된 문학상 '주목받지 못한 상'을 수상했다. 남파(南派)된 북한 간첩의 하루를 그린 '빛의 제국'의 작가 김영하는 르 피가로 등 3대 일간지에서 모두 화제가 됐다.

프랑스 소설은 1907년 쥘 베른의 '해저 이만 리'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된 이후 한국 소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후(戰後) 폐허 위에서 실존주의 문학은 젊은 세대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번 포럼을 지켜보면서 이젠 프랑스 현지 출판인들이 한국 문학의 역동성에 주목한다는 사실을 보고 놀랐다. 과거 한국 소설의 이미지는 전쟁과 가난으로 규정됐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세련된 관념과 언어 탐구, 페미니즘, 신세대 풍속 등 다양한 경향의 소설 번역으로 한국 문학의 메뉴가 다채로워졌다.

프랑스 문단(文壇)의 파워에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맡기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번역되면 유럽 다른 나라에도 소개되기 쉬운 게 사실이다. 이미 몇몇 우리 영화인들이 프랑스를 발판으로 그 꿈을 이뤘다. 이젠 문학의 차례가 오고 있다. 지금 프랑스 출판인들은 한국 문학에서 미래의 문학을 찾고 있다. 어떤 외국어로 옮겨도 감동을 잃지 않을 주제와 스타일의'글로벌 문학'이 우리 문학의 주류가 돼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