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 / 안효희
그 속엔 장롱과 냉장고와 세탁기도 있지, 나의 사랑과 나의 궁핍과 나의 파열도 있지
꼬리를 단 시간이 재깍거리고, 날짜들이 깃발처럼 벽에 걸려 펄럭거리지, 건너편 고층빌딩이 통유리 넓은 창으로 24시간 들여다보지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점점 배가 불러지면, 아치형 창을 내고 40층 50층까지 올라갈 수 있지
밤이 되면 전자 키 달린 출입문 안에서 혼자 밥을 먹지
곁에 누운 남자가 가끔 눈을 뜨고 일어나지, 빠끔빠끔 담배를 피우고, 그러다 다시 죽은 척하지
더불어 사는 무덤 1605호분
불룩한 배를 만지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도 몰래 작은 아이를 낳지 바깥으로 바깥으로 기어나가는,
<시와 반시> 201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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