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울며 사과 먹기 / 오명선

시인 최주식 2010. 7. 28. 22:50

울며 사과 먹기 / 오명선

 

윗집에서 일방적으로 보내온 사과상자

이건 사과가 아니다

밤마다 내 잠 속을 콩콩 뛰어다니는 어린 캥거루의 발목

쿵쿵쿵 주방으로 욕실로 돌아다니는 하마의 엉덩이

사과도 아닌 것이 사과 이름표를 달고 사과 흉내를 내며 사과인 척 공손하다

 

입만 열면 뻔한 변명, 뻣뻣한 반성, 꺾이지 않는 일방통행

고집불통의 이 상자

사과를 내 입에 물리고 밤낮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결국, 내 숨통을 틀어막을

 

의뭉스런 빨간 속내를 알면서도 뜯고

이렇게 흉보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억지춘향으로 뜯는다

 

캥거루가 하마가 훨훨 새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내 입과 귀는 진공포장 된다

 

학산문학 (2009. 가을호)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장 / 안효희  (0) 2010.07.28
病 / 정진경  (0) 2010.07.28
우람한 남근 / 이건청  (0) 2010.07.28
먼지흡입열차 / 최승호  (0) 2010.07.28
음악 / 홍신선  (0) 201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