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물비늘을 읽다 / 박정원

시인 최주식 2010. 8. 9. 22:15

물비늘을 읽다 / 박정원


누군가 왔다간다

바람이다
슬쩍 건드려보기도 하고 세게 치고 달아나기도 한다

숨이 잦아들자 강물은
하늘 자리엔 하늘을 구름 자리엔 구름을 산 자리엔 산을

어김없이 품는다

다시 바람이 꽃잎으로 조로록 내려앉자

거꾸로 앉힌 그들 자리에서는

안팎으로 드나들던 독수리 날갯짓이, 새끼염소 울음이, 푸른 멍을 입히던 물푸레나무 이파리가

갈기갈기 찢어진 깃발로 팔랑인다

신발 두 짝만 보듬은 사내의 젖은 눈이 아롱자롱 강물 위를 걷는데

수면을 박차고 치솟는 물고기 한 마리

덥석 그 눈빛을 물고 따라간다

갔던 바람도 돌아와 촤르르 빗질을 한다

강을 건넌 사내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빗살문자를 해독한다

하늘이, 구름이, 산이

흐트러짐 없이 그 광경을 베끼고 있다

수심愁心이 깊은 자리마다 빛을 낸다

저리 빛나는 줄도 모르고 강물은 가끔 빗살로 흐느낀다

굴절의 그늘이 더욱 눈부시다

 

시집<뼈 없는 뼈> 2010. 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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