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시월역(驛) / 손순미

시인 최주식 2010. 9. 1. 22:50

시월역(驛) / 손순미

 

  지네처럼 스르륵 기차가 오네 수수밭머리 새떼들 북천(北天)의 바다를 저어가고 벤치의 늙은이 지친 얼굴에 수고했다 수고했다 석양이 햇빛연고를 따뜻하게 발라주는 가을, 당신은 보이지 않고 우물쭈물 안경을 떨어뜨리는 사이 기차는 떠났네 돌아올 것이다 돌아올 것이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망상의 정거장, 나는 그 적막을 지근지근 밟으며 무슨 슬픈 꿈처럼 역사(驛舍)를 떠나지 못하네

 

  멀리 천일홍 언덕 너머 안적사 종소리 수풀의 벌레들을 울리고 저녁은 밭가의 농부를 말 없이 데리고 가네 모든 것을 버리게 하네 나는 전생의 길섶에 두고 온 것이 많았던가 무엇이든 보내지 못하네 나무들 하나씩 잎을 떨어뜨리네 저녁은 무엇이든 보내고 있네

 

 

  <시와문화> 2008. 가을호

 ' 소통의 월요시 편지' 2009. 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