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고은 신작시/ 후일 외 4편

시인 최주식 2010. 9. 11. 07:10

후일 외 4편

 

 

      고은

 

 

며칠을 두고 두 사내가 지지 않누나

 

바람이 움직이나니

깃발이 움직이나니

 

며칠 뒤 한 사내가 나서서

두 사내를 단번에 이기누나

 

마음이 움직이나니

 

천 오백년 뒤 한 사내가 일어서서 지지 않누나

 

함께 바람 움직이나니

함께 깃발 움직이나니

다함께 마음 움직이나니

 

아이고 잡것들 지랄허고 자빠졌네

 

 

 

빅서*에서

 

 

아메리카야

 

내 등짝 뒤

태평양의 밤이 있다

 

* 빅서 :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 절벽의 한 명소

 

 

 

한탄

 

 

이제 강은

내 책 속으로 들어가 저 혼자 흐를 것이다

언젠가는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강은

네 추억 속에 들어가 호젓이 흐를 것이다

네 추억 속에서

하루하루 잊혀질 것이다

 

이제 강은

누구의 사진 속에 풀린 허리띠로 내던져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것이 강인 줄 무엇인 줄 모를 것이다

 

아 돌아가고 싶어라

지지리 못난 후진국 거기

 

이제 강은

오늘 저녁까지 오늘 밤까지 기진맥진 흐를 것이다

자고 나서

돌아와 보면

강은 다른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이 없어라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포고

 

 

더 이상 발견하지 말 것

다시 말한다

더 이상 발견하지 말 것

 

불을 발견하고 술을 발견하던 시절이여

너무나 멀리 와버렸구나

 

바람 분다

나비들

내려앉아라

 

태평양

인도양

또는 대서양 심해 생명 140여만 종

 

천만다행이구나

(미발견의 생명 3천여만 종)

 

제발 그냥 놔둘 것

 

에디슨아

에디슨아

에디슨아

 

더 이상 발명하지 말 것

 

이로부터 발견과 발명 그리고 모든 발전

극형에 처함

이와 함께

모든 진리 극형에 처함

 

 

 

다시 은유로

 

 

아이야

너를 말하기에 내 은유밖에 없다니

너를 말하기에

썩어가는 내 은유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니

 

아직껏 말할 줄 모르는 아이야

다섯 살 여섯 살인데도

말할 줄 모르는 아이야

 

얼마나 좋으냐

 

특수는 사실이고

보편은 사실로 짜 맞춘 헛것이란다

때로는

어거지란다

 

콩으로 만든 두부

사흘도 못 가는 두부란다

어서 먹어라

먹다 말아라

 

내 냉장고 너무 믿지 말아라

 

아이야

아이야

너를 에워싼

소위 근대 보편의 은유들 너무나 오래되었다

 

아가야 네 언어 이전의 은유 어서 찾아라

아가야

아가야

 

 

- <시평> 2010.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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