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제12회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작

시인 최주식 2011. 1. 1. 22:23

제12회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작

 

 

노을 격포

 

 

               송 의 철

 

 

물거품 별처럼 이는

노을궁宮 격포 해변에서

웃는 눈물방울 보네.

저 한 송이 석양화夕陽花 앞에서

떠나온 여인은 소리 지르고

고래등 같은 섬 노을 분만하는

인어는 자장자장 하네.

그때, 모래 젖 물고 칭얼대는

거품들 떠밀어 탁아하고

바다의 풍성함에

연연하는 바람에 사로잡혀

파도의 두상들 금관 쓰고 너울춤 추는데

모여드는 해변엔 반짝이는

거품과 거품뿐이네.

날마다 잉태하고 날마다 분만하는

그 마음

몹시 슬퍼서 웃는 눈물 속으로

연한 연미복 입은 금성이

석양화 꽃마차에 노을공주를

태워 떠나네. 그리고

눈물방울 속에서 달이 뜨고 마네.

별들은 자장자장 반짝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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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수상작>

 

하늘에 별 총총

 

 

                  김 대 호

 

 

길에 피가 묻어 있다

그것은 로드킬 당한 짐승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즐거운 날숨 같은 거

오랜 지병을 앓던 자가 드디어 결심을 한 흔적

피는 길에 착 달라붙어 있다

피 스스로 길을 집요하게 쥐고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길이 한꺼번에 각혈했을 때

그 압력이 너무 세서 먼 하늘에 가 박혔다

밤이 되면 각혈한 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붉은 피가 너무 영롱하여 반짝인다

 

길에 묻은 것은 소심한 성격을 가진 피의 잔해

중력을 배반하고 드디어 별이 되지 못한,

소심한 성격 탓에 길을 꽉 쥐고 있는,

짐승의 시간을 살고 있는,

중력에서

원본에서

떨어지라고 바퀴가 짓뭉개도 힘을 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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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수상작>

 

 

삐비꽃

 

 

                           박 윤 근

 

 

산기슭 중턱에 활자들이 뭉텅 빠져있다

기우는 오후 두시의 각도에서 지워졌다

식물도감 빨간 볼펜으로 밑줄 친 그 속이다

손톱 밑으로 공복이 하얗게 말려들던 손,

보이지 않는다

 

직선으로 줄기를 뻗는 습성의 어느 풀은

종내 책등을 넘어 백태처럼 사라졌다

마음의 돌확에 여운이 길지 않았다

 

구멍에 빠진 저 풀

속지를 넘겨 줄때는 결이 민감해져

오래 변색되지 않는다

 

하지만 손이 멀어져 상처 난 마음

자간을 지나는 좀 벌레에게는

치명적인 먹이감이었다

 

뻥 뚫린 주변에 자라던 개정 향 풀도

끝내 문장들을 잡아주지 못한 손끝이 파랗다

책갈피 사이로 무거운 생각

뼈로 압화 돼간다

 

향기 없는 꽃이 무슨 죄가 되었는지

입술의 빛깔 지우며 다른 식물의 일가가 된다

 

결의를 해지한 풀들

어둔 구멍에 웃자란다

 

오랜 도감의 서열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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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수상작>

 

 

난 헌옷이다

 

 

 

                         이 명 예

 

 

철 지난 옷 정리하다가 지푸라기로 변해가는 흰나비를 보았다

아직 통통한 줄무늬 스커트 토라진 모자 단발머리 반바지

그들만의 숨이 거칠게 납작하게 빛을 내고

너덜너덜 실밥 깨진 곳은 어머니 시절엔 밥풀 이였을

뿌리 뽑히면 아무것도 아닌

정리 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다투어 줄을 선

한 때는 산소 먹고 별을 읽는 싱싱한 혈관을 자랑했다

찢기고 그늘 진 날개 운동하고 채식하면 건강한 시계 울리겠지

심장 헤치는 위험은 밟지 말아야하지

난 흰나비 난 헌옷

침 튀면 발끈 기울어질 허나 손질하면 입을 수 있는

주름 꼬이면 어떤가! 자존심 아직 시퍼런데

시침질 박음질 다툼 서너 겹 준 나이

헌옷으로 입문했으면 당당해야한다

양질의 탯줄 손가락 구분하지 않는 사랑

나는 원본이다

시간의 태를 입고 혈색 좋은

난 헌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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