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 고석종
덜커덩, 한 여자가 쇠저울에 던져진다
이름은 정이슬, 나이는 서른다섯 가량
주소는 불명이며
키는 161, 몸무게는 52킬로이다
시큼한 포르말린 냄새
흰 가운을 입은 부검의들이
생의 집행관보다 먼저 그녀의 주검을 수납한다
날카로운 메스 끝에
스스스, 아랫배의 찌든 시간이 끌려나온다
떼어낸 살점 하나가
알코올 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지고
끈질긴 톱날이 아득한 기억의 골짜기를 가른다
두개골을 빠져 나온 생각의 무게는 1,232그램
끈적거린 뇌수가 톱밥에 섞여 흐를 즈음
죽음의 사신이
부검실의 삐뚜름한 벽시계를 타고 내려온다
나는 주검을 분해중인 강력팀 형사
그 끝을 붙잡고 있다
거기 어디쯤
그녀를 앗아간 쾌락의 그림자가 있지 않을까
검붉은 생을 잇댔던
뒤틀린 끄나풀들을 쓸어 담은 부검의가
몇 땀 바느질로 그녀의 마지막 생을 봉인한다
갈라진 혓바닥, 쇳물 섞인 단내가 난다
세상은 하나의 사체부검실이다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누구도 죽음으로 갈 수 없다, 이슬처럼
시집 <말단 형사와 낡은 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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