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빈 화분 / 김점용

시인 최주식 2011. 1. 16. 15:33

빈 화분 / 김점용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묻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 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시집<메롱메롱 은주> 2010.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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