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분 / 김점용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묻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 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시집<메롱메롱 은주> 2010.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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