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어느 시인의 죽음 - 박성민

시인 최주식 2011. 1. 16. 16:36

어느 시인의 죽음 - 박성민


1
 변두리 허름한 헌책방
 먼지를 푹 뒤집어 쓴
 시집 한권 툭툭 털며 읽는다
 여성지와 중학교 문제집 사이에 꽂혀있는
 시인 박정만
 〈그대에게 가는 길〉 유고시집
 기필코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던
 시인의 시집
 靈肉을 짜내 쓴 시인의 피울음이
 곰팡이로 앉아 있는 시집 속
 시인의 눈은 눈물겹게도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헌책방 나와 낮술 마시며
 시인이 응시하던 하늘을 보았다
 타다 남은 연탄 같은 여름 해 아래
 질식할 것 같은
 어떤 삶의 원형을

 2
 죽음이란 결국 무엇인가
 밀려 떨어지는 톱밥처럼 우울하게
 이 땅에서 시인의 죽음은
 이래도 되는 것일까
 정육점 쇠꼬챙이에 걸린
 고기 덩어리 같은
 아아, 시의 살과 피

 3
 짙은, 먹빛으로, 빠르게, 번지는, 구름떼
 불현듯, 쏟아지는
 장대비 (아아, 저 쇠창살, 쇠창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