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수묵산수 / 김선태

시인 최주식 2011. 1. 25. 21:22

수묵산수 / 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오리 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 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一群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생긴 산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했더니

아서라, 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 아닌가.

보아라,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 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