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評·컬럼(column)

제주의 계절/최 옥 근

시인 최주식 2011. 4. 13. 22:19

제주의 계절/최 옥 근

  

꽃이 피고

산새들이 날아오고

고사리가 자라고

사람들이 동그랗게 손을 잡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


바람은 꿈을 꾸고

나무는 청년처럼 튼실해지고

마음은 말간 물빛처럼 순해진다

 

산 주름이 많은 길

주름마다 꽃물을 들이고

서러운 세월을 다독인다

그것을 바라보는 바다의 눈은

한없이 너그럽고 잔잔하여라

 

귤밭에 앉았던 바람이

창을 열고 들어오면

이방인들은 귤꽃 향기에 감전되어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복에 겨워 진저리를 친다

 

순하디 순한 제주의 계절

돌담과 바람과 까마귀는 어깨동무를 하고

푸르게 달린다, 한라산이 깃발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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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다녀 온 시인들이 그 결과물로 낯설고 무거운 제목을 단 관념시를 발표하는 것을 가끔 본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최옥근 시인의 <제주의 계절>에서는 그런 문제 의식을 발견할 수 없다. 제주도의 유명한 지명이나 관광 명소같은 것도 이 시에는 없다. 이 시의 미덕은 매너리즘이 느껴지는 어떤 문학성 보다는 시인의 진솔한 시작법에 있다. 꽃과 산새와 고사리에서 서정성을 만나고, 산 주름이 많은 길에서 보편적인 질문을 하고, 순하다 순한 제주의 계절에서 현대사의 굴곡을 초월한 제주의 역사와 눈물과 아픔과 한, 그리고 찬란한 미래의 희망을 보아야 한다. 순하디 순한 평화의 섬 제주여! 영원하라. (최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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